김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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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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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훈
이창민
송신규 개인전 《나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합정지구, 11.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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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에 위치한 합정지구에서 송신규 작가의 개인전 《나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가 개최되고 있다. 춘천 출신 작가 송신규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회화 13점과 드로잉, 애니메이션을 선보인다. 《자연으로 돌아가다》(토지문화관 박경리 작가의 집, 2020), 《풍경의 뼈》(KT&G 상상마당 춘천, 2021), 《인간과 고향》(박수근 미술관, 2022) 등의 개인전을 통해 그는 개발로 인해 변해버린 자신의 고향, 땅, 그리고 생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이전 전시가 유년기의 기억과 다른 고향의 풍경처럼, 물리적 공간과 지역에 집중했다면, 이번 개인전에서는 신작과 구작을 망라하여 일상의 고민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전시장 1층에는 작가의 최근 회화 작업 7점과 영상 작업이 설치되어 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는 상실감에서 비롯된 작업이기 때문인지, 분위기가 사뭇 무겁다. 눈에 띄는 것은 벽에 나란히 걸린 두 점의 작품(<기억의 터>, <나무 위에 걸쳐진 거처>)과 제목이다. <기억의 터>(2023)는 황량하고 메마른 공간에 있는 나무 몇 그루와 집을 검붉은 톤으로 그렸고, <나무 위에 걸쳐진 거처>(2021)는 숲 속의 나무 기둥과 가지에 걸쳐진 지붕을 그렸다. 작가는 작품 제목에서 그것이 ‘거처’라 하지만, 간신히 비바람만 피할 수 있는, 형태도 온전하지 않은 부서진 지붕에 가깝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집’ 혹은 ‘거처’라 부르는 것들은 대게 이렇다. 어느 부분이 빠지거나, 불안하고, 허술하다. 기억에 잔상처럼 남아있는 장소와, 나뭇가지에 걸쳐 무너져가는 지붕을 떠올려보면, 한없이 가볍고 불안해서 머지않아 없어져 버릴 것 같지만 두 작품에서는 무겁게 내려앉는다. 여러 겹의 물감 층, 그 층을 긁어내 생긴 상처들, 시간이 지나 생기는 물감 표면의 균열, 탁한 단색조가 그 무게를 만든다. <잡초>(2023), <땅으로부터>(2021)에서도 물감을 켜켜이 쌓은 후 긁거나 파낸 흔적이 보이는데, 이러한 흔적과 밀도 높은 그의 표현 방식은 삶과 기억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의 모습을 대변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송신규의 그림은 조금 투박하다. 진부할 수 있는 땅이라는 소재와 작품 표현 방식, 숨기거나 꾸미는데 익숙하지 않은 그의 태도에서 젊은 작가의 세련됨은 찾아볼 수 없고 진지하고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작가만 보일 뿐이다. 작품의 주제인 고향과 땅, 집에 대한 작가의 집착 역시 온전히 공감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것을 잊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에 눈길이 간다. 땅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 곳에서 시간을 보냈던 작가의 기억은 <나무 위에 걸쳐진 거처>의 지붕이 하나하나 뜯겨져 나가듯 점점 희미해질 것이고 작가는 그게 두려웠을 것이다. 단단하고 꾸밈없는, 어쩌면 틀에 박힌 그의 그림 스타일은 이전의 기억과 사라져가는 것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이었을 거라 짐작해 본다. 그로도 부족한지 <흙, 땅, 집 그리고 기억의 빈 터>(2023), <양구 겨울 밤>(2021), <양구 가는 길>(2022)에서 솔방울이나 벌집, 모래 같은 자연물을 그의 화면에 가두어 두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전시장은 1층과 지하로 구분되어 있다. 1층은 캔버스를 벽에 거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전시하였고, 지하는 수십 점의 드로잉을 벽에 붙이고, 캔버스를 벽에 기대거나 걸어 놓았다. 일기처럼 그려진 수많은 드로잉 속에 전시명과 동명의 작품 <나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2013)가 보인다. 지붕을 이고 걷는 사람과, 그를 따라가는 동물의 모습을 그렸다. 그림의 인물은 집의 나머지 부분을 만들려는 노력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지붕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간다. 전시의 제목으로 미뤄보아, 걷는 이는 목적지 없이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객은 그 모습이 작가의 모습이리라 어렵지 않게 예상해 볼 수 있다.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해 주위를 둘러싼 생명에까지 닿은 그의 따뜻한 시선은 유지한 채, 작가는 전시를 통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고민의 무게와 관심사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비록 조금은 어수룩하고 순진해 보일 만큼 전략적이지 못한 작업 방식을 고수하지만, 달리 보면 꾸밈없이 작가를 온전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주목할 만하다. 전시에서 ‘나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 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다. 작가가 자신에게 묻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그는 여전히 찾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머물렀던 터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돌아볼 것이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물감처럼 쌓인 그의 터를 돌아보려 상처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균열을 받아들이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 누구와, 어디에서 살아갈지.
_이창민
김상하
지난 4년 동안 나는 작업을 진행하며 밤섬을 관찰했다. 역사적 사건이 만든 숨죽인 자연은 아름다운 동시에 미치도록 섬뜩했고, 그 고요함은 나를 모든 과거의 순간으로 데리고 갔다. 매년 여름철이면 찾아오는 비는 나무 꼭대기까지 차오르며 섬이 쌓아온 풍경들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하지만 이내 새로운 계절은 허망함이 주었던 충격을 금방 잊게 했다.
작년 비는 유독 거세서 뉴스에는 연일 비로 인해 발생한 사건사고들이 보도되었다. 거리 곳곳에서 통제 불가능한 상황들이 발생하고, 대책으로 가지고 온 이야기들은 이미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속수무책 한 소리일 뿐이었다. 후덥지근하게 다가오는 축축한 공기와 양방향에서 쏟아지는 비는 피부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 습도는 날이 지나도 당최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아침이면 비가 멎기만을 바라며 잠에 들곤 했다.
홍수가 끝나고 섬에 다시 방문했다. 섬에는 여전히 뿌리를 붙들며 남아있는 나무들이 있었고, 어디서 흘러왔는지 모를 정체 모를 씨앗이 새로이 잎을 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묘한 공존의 풍경은 내가 이전엔 발견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디테일이었다. 모든 사라지는 것은 그 자리에 새로운 운동성을 남긴다는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합정지구 전시를 위해 작업을 마감하고 있을 때 즈음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10년 전 죽은 멍충이의 물건을 이제야 버릴 용기가 생겼다는 엄마는 일 키로도 안 되는 작은 존재가 이 집안에 흔적으로 남긴 온갖 물건 들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어 나에게 보내고 있었다. 이제 멍청이는 카카오톡에 전송된 사진으로 살아있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나는 아마 내년 내후년에도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 둥글게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변화를 거치며 만들어질 아지랑이같은 기억들이 분명 우리의 현재를 선명하게 비출 것이다.
김상하
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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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한계를 부수고 재정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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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너무 쉽게 이야기 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맥락을 아는 사람은 너무나 쉽게 이해하는 것. -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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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아무것도 규정내리지 않고 관계를 맺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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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하지만 또한 확신에서는 무엇을 잘라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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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이지 않아도 당사자가 알아채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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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감정을 드러내서 보여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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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규정짓지 않아도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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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의 감정을 이해한다면 수 많은 '판단기준'이 다 무력해지고
너와 나만이 그 감정을 토대로 같이 서 있을 줄 알았지.
그 감정을 공유하는게 무색해지는 어떤 '판단기준'이 결국엔 그걸 다 흐려놓는다. -
'그 사람은 그냥 그런 사람이야.' 라고 인정하면 될텐데,
왜 너는 '그런'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상처 입혀? -
나 또한 내가 너를 판단할 수 있을까 싶어서 모든 기준이 흐릿해지니
나는 작은 먼지가 되어서 하수구 안으로 들어가버렸어. -
아예 모르는 사람들. 익명만 원하고 나를 알려고도 안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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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픈따리 어쩌구 아니었으면,
그 간극이 이어지지 않았으면 나는 여전히 거기서 외로워했겠지." -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그렇다면 작가로써는, 내 능력으로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
피해자 역할을 대신 해주는게 아닐까?
왜 그 사람이 그렇게 할까에 대한 생각을 함으로써 (가해자)에게 권위를 만들어준다.
가해자를 인터뷰함으로써 내가 피해자 포지션이 되는 경우(막말을 하게 냅두는 경우) -
내가 좋아하는 것도 못 그리는데 왜 내 그림을 좋아해달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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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 그냥 하면 흘러간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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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작업을 하면서 '왜 기분이 나쁜건지?'
내가 지금 하는게 맘에 안 들어서 기분이 나빠.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찾았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 -
막연하게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해야해서 손이 나가지 않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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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 전시의 마지막에 내가 이어가고 싶었던 것과 잊어버렸던 것. 전의 작가노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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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낚아채가야 하는 미감싸움, 색감과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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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먼저 설득하려 하지 말고 나를 먼저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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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보여주려는 그림이 아니라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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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과 내 안에서 충분한 영감을 찾을 수 있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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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거 다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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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내 이야기를 이해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좀 더 긴 호흡으로, 조급해하지 않고 이야기 하기.
(좌)꿈을 꾸는 걸 알아(I Know You're Dreaming),
53x45.5, Oil and Color pencil on Canvas, 2023
(우)영원히 사랑이 그대를 감싸주길(May Love Embrace You Forever),
53x45.5, Oil and Color pencil on Canvas, 2023
허호
2023 Anti-Freeze에서 선보인 작업은 2014년에 그렸던 '산다는 것은 떠나는 것에 대한 연속(Living, Leaving)'을 2023년에 다시 그리면서 시작되었다. 언젠가 이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었다. 계속 게이 커뮤니티를 리서치 하면서 했던 작업은 나에게 게이를 위한 콘텐츠를 만든다는 효능감이 있었다. 그러나 드물게 커뮤니티로 부터 받은 피드백 중 '너가 뭘 알고 그런 작업을 하냐' 라는 말은 작업을 오독한데다가 나에게 해당이 되지도 않는 비판이라서 넘기면 되었지만, 이상하게 넘길 수 없었다. "내가 자아가 너무 컸구나, 하긴 내가 뭐라고 이런 작업을 할까." 그리고 내가 정말 게이를 내 편협한 시선대로 대상화 하고 있는 것일까? 또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퀴어라는 게 알게 모르는 대표성을 띄게 되기 때문에 내 말이 하나의 의견이라기 보다 무언가를 규정하고 오독하게 할 수 있겠다. 그런 흐름 사이에서 무얼 더 이상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온전히 내가 느끼고 그렸던 지점에 대해서 돌아봤다.
김유자
2022년 9월 8일
특정한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소거되는 이야기. 콜린 하거티가 기후변화 보도를 바라보는 관점과도 이어지는 듯. 덩어리로 묶이기 때문에 투박해지는? 투박함이 하나의 성격이 되는가? 개념을 쉽게 이해하는 또 다른 준거가 되지 않는가.
2022년 11월 24일
어떤 단호함이 우리의 문법을 형성하고 그것을 견고히 만들기도 하지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해. 방향과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여정에서 유연해지려는 사람들 진심이 느껴진다. 나는 여전히 사진에서 무언가를 압축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을 좋아하지만 오빠가 가진 고민 이해했다. 그것이 유실이냐 손실이냐 압축이냐 모두 다르게 정의하겠지.
2022년 11월 24일
다름을 보여주기 위해서 다르게 말해야만 하는가. 실험성을 위해 실험적인 방법만을 차용해야 하는가. 결국 나는 매번 전환점이 되는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반복하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건 아닌가.
2022년 12월 20일
보화각에서 촬영한 사진. “아무것도 없다”는 관람객의 말.
2023년 1월 11일
삶의 많은 일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둘 다 할 수 있고 양쪽 모두 바라볼 수 있다. 듣고 싶은 말을 글로 적으면 그걸 내가 눈으로 볼 수 있고 소리 내어 발음할 수 있어.
2023년 1월 31일
Q. 리더 지드래곤이 연습할 때 엄격하지 않은지?
T: 항상 좋은 말만 해준다.
Q. 어떤 좋은 말인가?
T: 좋은 말 할 때 외워, 좋은 말 할 때 다시 해…
2023년 1월 31일
오류에 흥미를 느낀 최초의 경험으로부터 점핑한다면 무엇을 줄이고 더해야 하는가?
2023년 2월 1일
멀리 있는 것 멀리 있는 사람들 그리워하는 마음 안고 살아가는 일 슬프다고 생각하면서 잠들었는데 꿈에서는 가까이 사는 친구들과 기차 여행을 떠났다. 땀 흘리는 계절이었고 땀에 젖은 친구의 얼굴이 건강해 보인다고 생각한 것이 기억난다. 바지가 몸에 달라붙을 만큼 더운 날이었는데도 다들 덥다는 말 없이 웃기만 했어.
2023년 2월 7일
A 작가의 글을 읽을 때 보고 먹고 걸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는데도 다 말해지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는 점이 좋다. 말이 부족하다거나 말의 한계라기보다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므로. 일부러 숨기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말을 하는데도 내가 알 수 없는 지점이 남아 있다는 것이 좋다.
2023년 2월 10일
매일 꿈을 꾸고 높은 확률로 악몽을 꾸고 그래서 자는 것이 더는 기다려지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일들을 위해 잠들어야 한다면 그 시간을 조금 기대해도 좋을 텐데.
먼 곳에서 왔네요 환영받은 목소리를 떠올리면 먼 곳에 다녀온 것이 실감 나다가도, 전철을 타고 있을 때는 이대로 조금 더 가면 다시 광주에 도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야기를 하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필요할 테고 그래서 그는 말하는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듣는 얼굴 같기도 했던 걸까. 전철은 추웠지만 광주에 내리자마자 금세 따뜻해지겠지 기대하며 눈을 감았다.
2023년 2월 12일
미량 씨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상 개념과 기준을 전제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대상을 집단으로 뭉뚱그리는 오류, 개개인의 삶을 고려하지 않고 장애라면 응당 이럴 것이라 속단하는 오류… 그런 식으로 손쉽게 지워내는 시간 속에서 구체적인 이름을 발음할 때 다른 것을 보게 되는 점이 정말로 좋다. 무엇이든 잘 발음하기 위해서는 우선 들어야 하는데, 듣고자 하는 미량 씨와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2023년 2월 13일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언가 있다고 믿고 느끼는 사람들. 그때의 마음.
2023년 2월 14일
“생각하는 것과 하는 것은 달라.”
2023년 2월 28일
허밍을 유지하기.
2023년 3월 1일
다른 것을 궁금해하고 상상하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좋지만 때로는 집중해야 해. 듣기 위한 마음인 건지 도피하려는 것인지 구분해야 된다.
2023년 3월 11일
어제 공모 지원서를 작성하며 재작년과 작년에 적은 일기를 다시 읽었는데 전시를 준비할 때는 비슷한 마음으로 지낸다는 것이 조금 웃겼다. 주변의 도움을 받고 있으면서도 혼자인 기분, 전부를 공유할 수 없다는 고립감.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타인의 의견에 기대고 싶다는 열망과 끝까지 가보아야 한다는 책임감. 그랬을 때 무엇을 보게 될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감. 내가 할 일에 관해서만 고민하는 것이 가능할 때 더 생각해야 해. 그러고 싶다. 조금 더 거친 이미지? 더 가까운 이미지? 희미한 허밍? 멀어지는 허밍과 다가오는 허밍.
2023년 3월 16일
일상에서 경직성을 줄이기 위해 변화를 주어야 하는데 무엇이 좋을까.
김유자
2021년 9월 26일
마음을 꾸미지 않고, 아니 고르지 못한 마음을 평평하게 만드는 대신 그것의 불균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을 갈구했다. 불균질/불순물에 집착하고 있다.
2021년 10월 6일
정연이 준, X-Ray에 노출된 필름으로 사진을 기록. 꿈 이야기를 짧은 글로 엮기? 진동.
2021년 10월 9일
흑백 사진. 소년의 얼굴. 문장들?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야 해.
2021년 10월 30일
최근 수업에서 배운 개념이 흥미로워서 지금 발전 단계인 작업을 설명할 때 차용할 작정이었는데—내 생각을 언어화하기 좋은 주제이기도 해서—근 몇 년간 예술계에서 자주 언급된 것이라 지양하는 편이 낫겠다고 정연이 말했다. 작업을 만들다 보면 왠지 흔한 생각 같기도, 이미 세상에 존재하거나 닳을 대로 닳아버린 의제 아닌가 싶기도 해서 곤란해진다. 완전히 새로운 주제가 어딨느냐 싶다가도 있는 것 같아서. 아니 새롭진 않아도 진부한 건 역시 피하길 바라니까. 가설을 끊임없이 증명하는 대신 파괴하고 균열을 다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전개한다면 더 솔직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것을 얘기하다가 흔적도 없이 말로만 설명해야 하는 것들을 다루는 거지. 지금처럼. 세계를 확장하지도 구축하지도 말고 그 허술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야만 뭔가 가능하지 않나.
2021년 11월 3일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감각을 깨우치는 일이 전부라고 자주 생각해서, 믿음을 의심하고 파괴하고 균열을 응시하려 하는데 때때로 이것이 맞는가 조심스럽다.
2021년 11월 16일
“정체성과 욕망이 반드시 대립하는 제로섬 게임 구도로 취급하지 않을 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전혜은 선생님의 말씀.
2022년 1월 24일
내가 지닌 마음은 오류에 가깝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가닿고 싶은 열망. 단언하지 않는 태도. 불순물. 졸업한 뒤 평소 내가 호기심을 가진 주제를 탐구했는데 모두 분명한 경계, ‘나’와 ‘너’ 사이를 단언하고 구분 짓는 자세를 주의하고 있었다. 다가갔다고 느낄 때 멀어지는 감각은 자칫 황망함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나는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 닿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시도로 이어지길 바랐다.
2022년 2월 5일
Cusp는 시각적 차원에서 ‘본다’는 행위가 지닌 균열의 가능성에 주목하여 의도적으로 틈을 가시화할 때 두드러지는 통제 불가능성을 긍정하는 작업.
2022년 2월 16일
기존의 언어로 현상을 설명할 수 없고 새로운 표현이 최선의 대안이 되리란 믿음을 갖지 못할 때, 이 모호한 마음은 어떻게 비겁의 얼굴을 띠지 않을 수 있나. 사진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2022년 4월 5일
사고를 확장하고 고착화된 신념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충돌은 어떻게 마주할 수 있지?
2022년 4월 22일
매체의 힘을 맹신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힘을 과소평가하지 않으면서 유연하게 사고하며 앞으로 나아갈 때 요구되는 자세는 무엇일까? 사진은 어떻게 기존의 감각을 탈피해 새로운 가치를 취득하게 되는가. 또는 망각의 영역으로 이동한 감각을 되살려 우리에게 고양감을 심어줄 수 있는가. 이번 제주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후자의 감각 전시장에서 가능케 하려면 무얼 놓치지 않아야 하나.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단언한 것들이 낯설어지는 순간을 내가 이해 가능한 언어로 부지런히 기록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조금은 덜 막막하겠지.
2022년 4월 30일
“실패의 감각을 예술로 드러낼 때 또 다른 가능성을 지닌다”는 철환의 말.
2022년 5월 25일
다른 속력으로 사진을 경험할 기회.
2022년 6월 2일
간송미술관 보화각의 마지막 모습을 관찰하며 느낀 점. 기능이 소멸됐으나 성격을 달리해 오래도록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을 이미지와 연결하여 되새김. 시간이 흐르고 기존의 의미를 탈피한 이미지는 어떤 과정을 거칠까.
2022년 6월 23일
이야기나 이미지가 연결되지 않고 산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어떤 장력으로 나아가는 것.
2022년 7월 16일
밀리시필름 콜렉티브의 <미래 도전자들의 무수한 얼굴들> 봤다. 너무 많이 자서 봤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작년 DMZ에서 관람한 <런던 순환도로>만큼 자막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는 모습에 압도됐다. 이런 방식을 선호하지는 않는데 현재와 미래의 고민, 과거의 이미지를 시네마가 연결할 수 있다 믿고 시도하는 행위가 재밌었다. 조악한 CG는 웃겼고 3-4번 자다 깨길 반복했는데 잠결에 본 문장이 모두 좋았다. 고민을 쏟아낸 것 같았고 분절되는 장면 사이 힘을 잃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어떤 말을 더 강조하거나 힘을 덜어내려는 의도 없이, 악센트를 살리지 않는 말과 이미지를 연달아 보면 지금껏 익숙하게 받아들인 극의 형식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것을 익숙하다 여긴 일이 환상처럼 다가온다.
2022년 7월 28일
접착하지 않고 분리됨으로써 더 선명해지는 선택. 매번 하는 말이 달라 잘 모르겠다는 사람과 매번 다르기에 확신이 선다는 사람. 정말 모든 것이 취향 차이일까. 나는 내가 하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이 일리 있어 보인다. 사진 매체만을 고집하는 이들이 갖는 고민. 사진 매체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가볍게 접근해서 사진이 재밌어지는 지점. 이야기 없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이미지 콜라주. 배경일 뿐인 이미지. 그 이미지는 상상력을 요하는가?
2022년 9월 18일
ORB 회의 내용.
못 보고 안 본 것을 보았다 말하는 일이 왜 발생했나?
그럼 이들은 무얼 본 걸까?
실체 없이 감각만으로 남아 있는 현상을 무어라 부를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착각으로나마 ‘보았다’는 행위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
장자인
무니페리
저는 2021년 많은 시간을 온라인 플랫폼 AFSAR(Asian Feminist Studio for Art and Research)에 쏟았습니다.
https://a-fsar.com
저와 중국 국적의 큐레이터 장한웬이 함께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올해 막 시작한 신생아 플랫폼이고 세계 곳곳의 소중한 연구를 하시는 연구자들, 작가들, 활동가들이 플랫폼을 통해 느슨하게 연결될 수 있는 장이 되길 희망하고 있어요.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플랫폼을 탈중앙화 형식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인데 이는 아마도 몇 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12월 중순에 7명의 작가, 연구자가 함께 진행했던 리서치 프로젝트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홍은아
오늘의 소설
2020년 8월 29일
길에는 어젯밤의 여정을 아직 마치지 않은 이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나는 때로 아침의 비둘기 떼를 떠올린다. 새벽에 푹 저며진 이들의 행상에서 비릿한 술 냄새를 맡는다. 사실 나는 술 문제가 있는 이웃을 만난 후부터 이들을 완전한 타인으로 느끼지 않는다. 밤, 낮, 아침 우리는 이웃의 취한 꿈을 엿보았다. 알코올이 주무르는 삶의 쳇바퀴는 지독히 위태롭고 외롭게 움직인다.
빵집을 들러 아침거리를 사갈까 하다, 어제 먹던 빵이 남아있는 것이 기억났다. 서둘러 몸을 움직여 지하철에 탄다. 죽이는 시간, 내지는 죽어버리는 시간. 타협할 수 없는 이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슬쩍 눈을 감고 오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혹은 이해할 수 없던 말들을 굳이 끄집어내어 취조한다. 왜 그 말은 이 말이 아니어야 했는가. 왜 그 말은 수행되어야만 했는가. 내가 내뱉은 말들과 내게 내뱉어진 말들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지름과 무게를 측정하고 순도를 감별한다. 후회나 모욕감, 혹은 자괴감에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행하는 습관 같은 의식이다. 얼마 전에 어디에선가 상대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절대로 끝까지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기 전에 감별하여서 하지 않는 훈련도 부진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의 달콤함에 종종 굴복하는 과거의 나를 반성해본다. 그렇더라도 사람은 한순간 바뀌지 못한다.
트람이 오려면 3분이나 남았다. 반복해 듣던 앨범은 이제 귀에 물린다. 끝없이 듣고 또 들어도 계속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있을까? 종일 한 앨범만을 들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마음에 드는 음악이 선곡될 때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보통 라디오를 듣는다. 좋아하지 않는 곡이 나와도 이 곡이 반복 재생될 리가 없으니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다.
어제 헹구지 않은 컵을 씻고 커피를 내린다. 작업을 바로 시작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왜 이해할 수 없는 미련들이 시작을 방해하는 것일까. 혹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내게 아직 추상적으로 머물고 있기 때문에 시작이 미뤄지는 것일까? 아침을 먹으며 간단하게 마음을 추슬러 봐야겠다.
요새는 드로잉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 섬세한 피부 아래 뼈와 근육, 핏줄, 지방 같은 것들이 흥미로운 조형물을 형성한다. 멜라닌과 빛이 만들어내는 음영을 가늠하며 서걱서걱 종이 표면 위 사람의 형태를 추적한다. 그림을 이루는 것은 그리는 대상의 존재 여부만이 아니다. 그리는 사람의 해석은 그리는 대상을 완전히 다른 맥락 속으로 끌어들인다. 대상은 조형적으로 새로운 맥락 속에 재구성되고, 그것의 사회적 의미도 재배치된다. 작은 종이 위 속의 조형적 세상은 서걱거리는 색연필 아래에서 피어오른다. 고개를 돌려 그리고 있던 캔버스 작업을 응시한다. 주섬주섬 안경을 닦아 쓰고 들여다본 그림은 갈 길이 구만리다. 풀지 못한 문제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그 자리에 서서 나를 정승처럼 바라보고 있다.
나는 2000년 초중반부터 줄곧 유화에 매달려왔다. 매달린다는 말이 적합한 것은 나는 여전히 유화라는 재료를 완전히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다 자꾸만 허우적거린다. 조금만 더 가볍게 생각하고 그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마음과 이성과 몸은 서로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몇 발자국 앞서 나간다. 협의할 수 없는 간격에 절망감이 든다. 그래도 꾸역꾸역 앞으로 간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그림을 그리는 날이 부지기수이다.
가끔 내 그림 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도도 해보았다. 노트에 조형적 요소들을 나열하고 그림 그리는 과정을 간략하게 도면화하여 문제를 드러내면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을까. 그러고 나서 그림을 그릴 때는 문제가 해결되는 듯하였다. 시간이 지나고 그것은 하나의 가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아무런 기대 없이 시도하고 또 시도하는 방법이 오히려 바라는 상태로 도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일지 모르겠다. 그간 쌓아온 경험과 인지가 오히려 내 그림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림이 제어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한 상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에 그림이 나를 주도하여 몸을 움직인다. 혹은 나라고 인식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인식하는 나일까. ‘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험을 한다. 내가 그리는 것이 그림인지 그림이 그리는 것이 나인지.
뚜렷한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시작한 경우 주제와 조형적 언어 사이에 괴리를 많이 느꼈다. 그 둘의 교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작업 진행이 어려웠다기보다는, 조형적 언어가 주제를 담으려면 훨씬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나는 좀 서둘렀던 것 같다. 이 과정 안에서 효율성은 적용되지 않는다. 어디에선가 성공적인 결과를 위하는 과정은 욕망과 인내심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 하였다.
오늘 사용한 식기를 세척하고 집에 갈 채비를 한다.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는 길은 온통 들뜬 사람들로 가득하다. 단지 좋은 날씨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풍요로워질 수 있는 법이다.
최장원
권동현+권세정
epilogue
prologue
박은정
** 아침 9시-21시 30분까지 묶여 일하고 있다. **
동생이 사장인 가게다. 고용에 불안함을 느끼지 않고 파트타이머로 일하며 늙을 때까지 그림 작업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줄 백년가게를 꿈꾼다. 정말 일을 오래하면서 버티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부지런히 오고 구청 주변 사무실들에서 대량 구매를 하겠지 하며 밀크티와 간단한 빵과 디저트를 파는 가게로 시작했는 데....
확장하면 차와 커피를 간단한 빵과 밥을 먹을 수 있는 마카오의<남핑까페>를 꿈꾼다.
오래오래 일하다 지칠 때 식재료들로 접시를 장식한다.......
**
김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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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파고든 어둠이 너무 깊을 때, 우주를 홀로 떠도는 작은 통조림을 떠올리곤 했었다.
오랫동안 해온 일을 그만두고, 오랜만에 동종의 어둠에 싸여있었다.
어제 바닥에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조금 더 깊어지는.
말그대로 누워서 울던 그 시간동안에도 나는 이 시간이 언젠가 지나갈 거라는 걸 알았다.
기특하게도 이제는, 이 어둠이 지금 내게 필요한 시간이라는 걸 안다.
올라가려면 한동안 머물러야 한다는 것도.
때가 되면 스스로 힘껏 손을 뻗을 거라는 것도. -
어둠에 묻혀 사라질 것 같을 때는 더듬더듬 호두를 쓰다듬는다. 곁을 지켜주는 것들과 닿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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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듬어서 내어놓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일어나야지.
아무렇게나 먹고 아무렇게나 누워서 종일 이 생각만 했었다.
또 이렇게 지나가고 잊어버릴까봐 겨우 겨우- 스케치를 해두었다.
아마도, 바닥에 닿은 것 같다. -
하루에 쓸 20만원의 식재료비가 생긴다면 신선한 채소와 과일들을 가지고 간단하고 풍성하게 식탁을 차리겠다.
그리고 내게 용기와 영감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서로에게 힘을 받는 것처럼, 우리는 싱싱한 먹거리들이 품은 힘에 기대어 산다. -
결국에는 깊은 어둠 속에서 홀로 싹을 틔워내는 씨앗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 알의 작은 씨앗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 -
그 많은 생명들에 기대거나 빼앗는 ‘먹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래서, 살아있으니까.
내가 죽은 다음에는 땅과 미생물과 벌레와 식물과 동물들이 먹을게 남아있는채로 묻히고 싶다. 가는 길에라도 지구에, 땅에 뭐라도 보탬이 되는 쪽으로. 산이든 들이든 밭이든 마당이든 어디든. 나를 먹여준 것들에 나도 먹이가 되도록. -
마야 사람들에게는 ‘카스리말 kas-limaal’이라는 개념이 있었다고 한다. 그 뜻은 ‘서로 빚지는 것, 서로 생명을 주는 것’. 동물과 식물, 인간, 바람, 계절 등은 모두 서로의 열매에 빚을 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내가 커다란 자연의 ‘일부’, 생명 순환의 ‘순간’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막연하게 생각했던 죽음도 삶도 맑고 단순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
나는 다시 씨앗이 되었다. 중년이 되자마자.
싹을 틔우고 제법 자라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른 추위가 다가오면 재빨리 씨앗을 맺어 다음 생을 기약하는 식물들처럼, 크게 흔들리고 나니 다시 작은 씨앗이 되어 후두둑 떨어져버렸다.
그러니, 괜찮다. -
지금 내 곁에는 호두가 있다. 호두는 주로 잠을 잔다. 말을 걸면 조용히 나를 응시한다. 이 털복숭이 존재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아서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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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기 전에 수확해둔 레몬그라스와 애플민트, 페퍼민트, 레몬밤을 씻어 말려두었고, 차조기 잎은 씻어서 물기를 빼는 중이다.
곁에 있는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내 텃밭에서 나는 것들로 식탁을 차려주고 싶다.
내 마음과 힘을 고스란히 담아. -
지금 오후 4시, 보슬비가 끊어질 듯 말듯 내리고 있다. 당장 문 밖을 나선다면 동네 천변을 걸어도 좋겠다. 혼자 계속 걸어도 좋고,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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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공동체는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들의 연결이 공동체라는 사실을 서로 인정하면. 아주 느슨하고 덤덤한 그러나 끊어지지 않고 온기를 나누는 공동체로. 서로의 이상함이 양해가 되는 개인들끼리 만드는 이상한 작은 공동체들이 아주 많아지는 것. 우리는 결국 커다란 순환 안에서 서로의 일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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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사람이 타인이나 다른 존재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우리들이나 자연의 모든 것이 근원에 있어서 모두 하나의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 것밖에 달리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_ 김종철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김송희
김송희
어젯밤에는 꿈도 없이 달게 잤어요. 자기 좋은 계절이에요.
잊을 수 없는 꿈이 몇가지 있는데, 어떤 마음이 갈무리 되면서 꿈을 꾸기도 해요.
그런 꿈을 꾸고 기록해두었던 걸 찾다가, 태이언니-순덕형님에 대한 꿈을 꾸었던 날의 일기를 찾았어요.
얼마 전 배미정작가-미정언니의 '아는 여자' 전시를 보고 책을 사서 읽으며 언니가 순덕형님과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순덕형님은 미술이 너무 하고 싶어서 중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다시 입시를 해서 미대에 왔다고 들었어요. 입학한 해에 형님이 30살이었을 거에요. 그런 열망과 용기가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나요.
늦은 입학으로 동기였던 순덕형님과 나 그리고 복학한 선배였던 미정언니는 함께 학교를 다녔었어요. 졸업 후 대부분과 연락을 안하고 지냈기에 미정언니와도 서로 연락할 일은 없었으나 우연히 언니 작업을 보곤 했었어요. 근래 지인의 지인으로 SNS에서만 보다가 언니 전시 <아는 여자>를 찾아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한장의 그림과 그를 설명하는 문장 때문이었어요.
“반짝이고 있었던,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싶었다. 마음 깊은 곳에 박제된 빛을 가끔씩 꺼내 어두운 모퉁이에 다다를 때마다 그곳을 밝혀 본다.”
관련한 글을 모아서 만든 동명의 책도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찾아간 서점 겸 전시장에서 언니를 또 우연히, 드디어 만났어요. 예전과 어쩜 그리 똑같은지, 그간의 공백을 확 없애는 다정한 부산 말투와 개구장이처럼 활짝 웃는 얼굴이 반가웠어요. 그리고 각자의 일행을 신경쓰며 다급히 안부를 묻는 그 짧은 시간동안 왠지 불쑥 나와버린 순덕형님 이야기.
나는 아마도 형님을 기억하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걸까요. 미정언니는 형님과 가까웠다고, 책에도 그 이야기를 썼다고 했어요. 순간 먹먹함을 웃음으로 넘기며, 우리는 다시 만나자 약속하고 헤어졌어요.
집에 돌아와 첫 장을 읽으며 기분이 묘했어요. 내가 모르는 순덕형님의 마지막 날들이 적혀있었어요. 이제 이곳에 없는 사람이 돌고돌아 이렇게 우리를 다시 연결해주고 있어요.
미정언니의 말대로 순덕형님-태이언니는 우리 '마음 속 박제된 빛'이 되었어요.
꿈을 꾸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잔뜩 먹고 밤 늦게 돌아왔는데 그 때문인가...
내내 화창한 날이었다. 어떤 공간에 대학 동기들이 모여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작년에 이쪽 세상을 떠난 동기 태이언니도 있었는데 학교다닐 때 언니랑 셋이서 같이 잘 어울렸던 혜진이랑도 인사를 나눈 다음 언니와 둘이 거리로 나왔다. 걸어가다 왠일인지 지금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있길래 반갑게 인사하고 계속 걸었다.
태이언니, 아니... 언니의 옛 이름에 왠지 오빠 언니라는 호칭이 쑥스러워 형님이라고 붙여 불렀던, 더 익숙한 이름 - 순덕형님이랑, 아마도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화산동 집으로 넘어오던 길에 있던 옛 동네로 여겨지는 거리를 걸었다. 원래 낮은 집들만 있던 주택가인데 꿈 속에서는 연남동이나 망원동처럼 작은 까페나 가게가 많이 생겨나 있었다.
순덕형님과 같이 뭘 좀 먹자 했다. 나는 예쁜 브런치 까페 같은 곳을 가려했는데 순덕형님이 아주 아주 오래된 시장통 분식집 같은 곳으로 나를 끌었다. 천장까지 오랜 시간의 때가 켜켜이 앉은 그 곳은 처음 갔는데도 익숙하고 친근하고 그리운 느낌이었다. 해가 밝은, 아주 화창한 날 우리는 적당히 아늑할 정도로 어두운 그 분식집에 들어가서 메뉴를 보았다. 떡볶이와 김밥 등 생각보다 메뉴가 많았는데, 뭘 먹을까 하며 순덕형님이랑 희희덕거리며 메뉴판을 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아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꿈을 종종 꾸는데, 보통 꿈을 꾸면 꿈에 그이가 나왔더라고, 핑계김에 연락을 하곤 했었다. 전화기를 들었는데, 연락할 곳이 이제 없다. 가만 생각해보니 꿈 속이지만 순덕형님이 이제 세상에 없다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형님과 만나 얘기하고 걷고 한게 더 기분이 좋았던 것도 같다. 꿈 속 풍경을 다시 생각해보니 햇볕이 환하고 여우비가 내렸던 것 같기도 한데, 날씨 좋은 날 치앙마이의 거리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역시나 기분이 좋다. 그래서 꿈에 잠깐 만났던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기분좋은 꿈을 꾸었는데 너도 나왔다고.
작년 이맘때였나 형님이 돌아갔다고, 발인이 고향인 제주라고, 실은 아픈지 오래였었다고, 1차로 치료하고 괜찮았다가 재발해서 고향에서 투병하다가 갔다고, 학교 마치고 대학원을 다니며 학교에서 일했는데 작업과 병행하면서 몸을 돌보지 못한거 같다고, 주변에서 몸 챙기라고 잔소리를 해도 혼자 살고 작업하다보니 그러지 못했다고... 모든 소식을 압축한 파일의 제목들처럼, 한꺼번에 뭉텅뭉텅 들었다.
동기들이랑 거의 연락을 안하고 지내니 전혀 몰랐다. 가끔 형님이 먼저 연락해서, 본인이 날 잘 챙겨야하는데 미안하다고, 언제 한번 보자고 하면, 늘 응응 그래요 그래요 만 했었다. 연락이 뜸해지고 한번은 갑자기 호두파이였나 쿠폰을 보냈길래, 이게 뭐에요? 하면서 고맙기도 하고 놀라기도 해서 먼저 연락해 조만간 꼭 보자 했는데, 늘 말 뿐이었다. 그러다가 형님이 떠났고 제주에서 발인을 한다고 전전날인가 소식을 들었지만 일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어쩌고 저쩌고 스스로 적당한 핑계를 둘러대며 가지 못했다. 그렇게 놀랐고 슬펐고 그 다음은 묻었던가 잊었던가....
일요일. 종일 집에서 호두와 둘이 시간을 보내며 천천히 밥을 지어 먹고 천천히 청소를 하며 밖에서 들어오는 햇볕과 집 안에 고여있던 공기가 만나 시간이 흐르는대로 색이 변해가는 것을 보았다. 해가 길어져 집안에 지는 볕이 가득할 때, 해야하는 일들을 잠시나마 다 잊고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만났다. 순간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사소한 장면들이 새삼 ‘기억’으로 만들어질 때, 사는게 참 별거 아닌데 싶다가도 살아있으니 이런걸 느낀다 싶었는데... 어쩌면 나는 오늘 내내 마음 뒷 편에 간밤에 꾼 꿈 생각을, 연락할 곳 없는 순덕 형님 생각을 접어두었나 보다.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폰에 저장해놓은 지난 메모들을 보며 작년 이맘때 쓴 글들을 보았다.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다고. 유난히 그 해 여름 아는 이들의 죽음이 많아 맘이 이상하다고 주변에 기대던 시절이었다. 그때 약해진 마음으로 쓴 글들 옆에, 어젯밤 이후 내내 접어두었던 순덕형님 꿈을 펼쳐서 나란히 놓아본다.
순덕형님이 가는 길을 못 봐서 마음에 남았던가. 그때, 발인일이 지난 후 오랜만에 혜진이와 만나 형님 얘기도 하고 근황 얘기도 하면서 이렇게 가끔 보자 했는데 그것도 꼬박 1년이 지났다. 시간은 빠르고 우리는 점점 더 죽음이 가까워지고 덕분에 삶을 더 깊게 느끼게도 되는 가보다. 오늘처럼. 형님이 이 세상에 있을 때에도 연락을 통 못하고 못 보고 살았어서 문득 문득 부재가 더 낯설다. 전화 저편에 있을줄 알았는데 없다는 것을, 애틋하게 잡고 있지도 않았으나 잘받아들이지도 무심해지지도 못했던 거다. 기분 좋은 꿈으로, 이제야 내가 순덕형님을 보냈나보다.
순덕형님. 거기서 잘지내고, 작업도 재밌게 하고 있나요? 다음에 만나면 우리 같이 맛난거 많이 먹어요. 또 와요.
2018.7.16. 02시
김송희
서다솜
나는 오래된 강아지와 산다
오래 산 강아지는 하얗고 푸른 빛이 도는 회색이고 조금 붉은 색이다
오래 산 강아지는 오래된 붕대 냄새가 난다
오래 산 강아지는 고개를 잘 들지 못 한다
오래 산 강아지는 걸음이 느리고 뒷다리 하나를 절기 때문에 계속 그 자리에서 맴돈다
오래 산 강아지는 바깥을 산책할 수 없는 대신 집 안을 매일 빙글빙글 돈다
오래 산 강아지는 조금 오래 걸으면 숨이 가빠지고 꼬박 5시간 정도 깨지 않고 잘 수 있다
오래 산 강아지는 아주 오래 전부터 매우 깔끔 떠는 강아지였다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는 때에도 여전히 깔끔쟁이다
오래 산 강아지는 여전히 닭가슴살을 좋아하지만 씹을 수가 없어서 갈아 주어야 한다
오래 산 강아지는 가끔 짜증을 낸다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오래 산 강아지는 병원에 가면 갑자기 기운이 생겨서 온 몸으로 도망친다
오래 산 강아지는 하루에 두 번 약을 먹는다 간과 심장과 신장을 위한 약이다
오래 산 강아지는 조금씩 작아지고 있다
오래 산 강아지는 매일 작은 숨을 쉰다
나는 매일 그 숨을 들여다 본다
매일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매일
김송희
김송희
김송희
후삐요이 후삐요이
우찌지지지지지지지지
훠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
끼요이 삐요이 후요이 삐요이
위임뮈임뮈임뮈임뮈임뮈임뮈임뮈임
치치치치치치치치치치치치치치
츠츠츠츠츠츠츠 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
미욤미욤미욤미욤미욤미
이요오이 요오이 요오이
후티티티티티티티티티티 우띠티티티티티이이
키리리리리리리 키리리리리리리
훠띠요이 후띠요이 후띠요이
호뜨로이리리리리이이이이이이
뿌르리이 퓨르리이 뿌르리이 프르리이
트리리리리리리릴리리리리리이이이
김송희
얼마 전부터 백수가 되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가라앉아 한동안 잠을 많이 자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동거인의 생활패턴에 맞추어 6시쯤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6:30쯤 동거인이 출근하고 나면 온전히 내 시간이 되요. 오랫동안 바란 시간인데 잘 못 쓰고 있어요.
집이 작아 오랫동안 고민만 하다가, 며칠 전 마음 먹고 내 방을 만들었어요. 부엌살림이 한편에 자리잡고 있지만, 처음 가지는 내 작업실이에요.
정면에 우리 텃밭과 산과 하늘이 보여요. 산동네 꼭대기에 살기 때문에 가능한 풍경이에요. 그쪽에서 불어들어오는 바람이 참 좋아요. 온갖 산벌레와 산새들의 소리도요.
창 밖으로는 언제나 자연이 보이면 좋겠어요.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만날 수 있도록.
오롯이 나만의 방은 아니지만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뭔가 해보겠다는 고마운 마음이 생겨요. 용기 같은 걸까요.
오랫동안 내가 만들어내는 글과 그림에 ‘쓸데없는’ 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써서 보여줄 공간이 없었다는 의미여서도 그랬고, 말그대로 무용無用해서도 그랬고요. 쓸데없는 짓거리에 마음이 동하는 편이라서 그 이름이 좋았습니다. 보잘것 없어도 저에게는 필요한 작업이었어요.
작년에 빈 시간이 조금씩 생기면서 아주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때의 마음도 일기처럼 그려두었어요.
5년 뒤 오늘 나는, 이른 아침인 이 시간에 나만의 작업실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작업을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곧 생업을 위한 출근을 해야하더라도 집중해서 마음껏 내 작업을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처럼 건강한 호두가 책상 아래 엎드려 자고 있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이곳이 아닐 수도 있겠죠. 어디든, 초록이 보이는 곳일 거에요.
조주현
조주현
소민경
송승은
임영주
외할머니가 떠난 지 한달이 지나간다. 소식을 듣고 부산으로 내려와서 장례식장을 들렀다.
장례식장은 격하게 슬프다 밥을 먹고 농담을 주고 받고 웃다가 나른해 지다 또 격하게 슬픈 것을 반복했다.
새벽에 할머니가 살던 집으로 건너갔다. 해가 뜨기 시작할 때 할머니 방 문을 열고 방을 치웠다.
전날 부터 켜있던 형광등을 끄고 이불을 개키고 이것 저것 정리를 하니 끝이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끝났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몇가지 일을 마치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 며칠간 머무르고 있다.
엄마가 앞으로 이사 갈 집을 고치기 위해 이리 저리 알아보다 보니 하루가 금새 지나간다.
오늘은 할머니 막내 여동생, 엄마의 이모께서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다 할머니의 옷가지를 챙겨 가셨다.
며칠 전에는 친구분이 흙 매트를 가지고 가셨다.
방이 점점 더 훤해진다.
여기 있는 강아지 심뽕과 심쿵은 이전 보다 더 나를 많이 핥는다.
할머니방에 들어가 누워 있으면 따라와서는 빙글 빙글 돈다.
심쿵은 나를 지킨다고 아침에 나를 깨우는 엄마를 향해 으르렁 거린다.
아무래도 이제 내가 여기 같이 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며칠 후면 떠날 건데 모르는 것 같아 걱정이다.
김이박
김학량
김학량
김학량
김학량
김학량
진지현
오늘 내 방에 누우니 천장에 작은 야광 불빛이 멀리서 빛난다. 이 집에 산지 벌써 15년이 넘어가는 동안 잊고 있던 빛이다. 늘 휴대폰을 만지다가 잠이 들어서인지 15년의 시간이 지나온 탓인지 빛은 희미해졌다. 초등학교 시절 이 집으로 처음 이사와 적응하지 못하고 매일 악몽을 꾸었다. 그때 나는 아빠에게 야광별을 사다달라고 했다. 하지만 야광별을 찾다가 야광 곤충들을 사다주었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빛나고 있는 야광별을 생각하던 내가 실망할 것 같았다고 한다. 예상과는 다르게 야광 곤충을 보고 좋아하며 천장에 붙혔다고 한다. 이런 나를 키우며 아빠는 매번 둔한 아이인지 예민한 아이인지 헷갈렸다고 한다. 갑자기 방에 누워 천장에 여전히 매달린 곤충들을 보니 지난 시절이 생각나며 웃기기도 하고 지난 15년동안의 이 방에서의 여러 기억이 스친다. 다 새 것이였던 벽지는 누렇게 때가 탔고 15년전 그 자리 그대로 책상이 위치하고 있다. 갑자기 이제는 따로 사는 우리 아빠의 얼굴도 떠오른다. 시간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저 희미해진 야광 곤충과도 같은 희미한 망각인 것일까. 내일은 이 곤충들을 몇장 사진을 찍어야겠다.
진지현
나는 쉬는 방법을 잘 몰랐다. 비어 있는 시간에는 무언가를 반드시 했다. 지금도 어린 나이지만 불과 몇년 전에는 7일내내 매일 몸을 움직여 왔다. 작업을 하기 위해 작업실 비용을 충당하려면 일주일 기간 동안 쉴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떤 그림을 그려야하는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일이였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생각을 늘 급급하게 쫓기듯 해왔다.
그런 시점에 몸과 마음이 아파왔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다시 하기까지는 1년의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방에 겹겹이 쌓인 옷은 나의 상태와도 같았고 그 옷들을 최근에서야 다 정리했다. 몸이 나를 멈추도록 만들어준 셈이다. 지금 나는 휴일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일주일 중 하루는 반드시 집에 누워 집에 있는 어지러운 사물을 지켜보며 휴식을 갖는다. 작업에 대한 즐거움보다 압박이 먼저 다가올 때면 밖으로 나가 주변 시장을 돌면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맛있어 보이는 시장음식들을 골라 사서 들어와 먹는다. ( 그래서 살이 아주 많이 쪘다.) 특히, 나는 강아지 미용 영상을 보며 마음으로 쓰담쓰담해줄 때 가장 많이 웃는다. 그렇게 언젠가 부터 나에게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자연스럽고 생활에 녹아 있는 한 부분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나에게는 이제부터 스스로에게 의무적으로 만든 시간이다. 이런 짓, 저런 짓을 통해 아등바등 긴 시간을 건너왔다. 이제 나에게 있어 의무적인 휴일은 작업을 지탱하는 근원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서야 나의 그리기가 시작 된 것만 같다.
박유미
박유미
최장원
〈똥을 싸고 뭉개기〉
내 동생에게 너무나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8월에 하는 개인전에 오라고 말했다. 전시 제목은 《HIV감염 7주년 기념 RSVP》다. 나는 내 동생이 내가 HIV에 감염된 것을 모르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동생은 내가 HIV를 주제로 한 작업으로 참여한 전시에 와서도 그것에 관해 얘기하지 않아서, 그냥 그 애가 아주 둔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애가 전시에 비치된 글을 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통화로 '전시에 와~ 근데 전시 제목을 보면 네가 까무러칠지도 모르는데~'라고 말했다. '뭔데 그래?' 나는 '나 7년 전에 심하게 아팠던 거 기억나? 그거 급성 HIV 증후군이었어.'라고 말했다. 그 애는 '어... 나 알고 있는데?'라고 대답했다.
내가 HIV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어머니였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얘기하면서 '네 동생에게도 말했더니 너무 놀라 충격을 받아서 감당을 못하길래 오진이라고 둘러댔다'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나는 7년 동안 동생이 내가 HIV에 감염된 줄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통화에서 동생은 자신이 부모님보다 먼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HIV가 몸에 처음 침투하면 '급성 HIV 증후군'이 생긴다. 사람마다 증상이 다른데, 보통 발열, 두통, 뇌수막염, 구토 등으로 온다. 나는 매우 심한 뇌수막염 증상이라고 생각해서 대전 건양대에 입원했다. 그때 내 동생이 대전에 있어서 나를 보러 병원에 왔었다. 그때 내가 상태가 매우 안 좋아 져서 혼자 복도를 헤매면서 집에 간다고 헛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걸 보고 심각하게 여긴 동생이 부모님에게 연락했다. 이후 가족들은 나를 더 큰 병원인 충남대로 옮겼다.
수화기 너머로 동생은 건양대에서 의료진들이 내가 혈액 내 어떤 항원이 지나치게 높다고 말하는 걸 듣고 알게 되었다고 했다. 동생은 의료 관련 공부를 해서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었던 것 같다. 동생은 그 이후로 건양대 측에서 나를 조금 격리하려고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또 그 애는 이후 옮긴 충남대에서도 내가 HIV감염인이어서 응급실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주사 놓는 것을 늑장 부린다든가 하는...
나는 7년 동안 잃어버린 동생을 찾은 것 같다고 동생한테 말했다. 동생은 '어... 서운한데...?'라고 했다. 나는 'HIV를 주제로 한 내 작업물들을 봐도 별말을 안 하길래. 네가 미술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넌 SNS도 전혀 안 하니까 내가 인터넷에서 하는 얘기들을 못 봐서 모르는 줄 알았지...!'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몇 마디를 더 나눈 뒤에 그 애에게 내 전시회 일정을 알려주고 통화를 마쳤다.
왠지 기분이 좋기도 하고 마음이 이상해서 어머니에게 통화를 걸어 동생과 통화한 것을 얘기했는데 '어 걔 알아...;;;'라고 했다. 내가 동생한테 '7년 동안 잃어버린 동생을 찾은 것 같다'라고도 말했다고 하니, 어머니는 '똥을 싸고 뭉개고 있네...;;;'라고 했다. 나는 똥을 싸고 뭉개서 좋았다.
부원희
젊은 나뭇잎들이 한껏 뿜는 정기가 가득한 숲이다. 농후한 꽃향들도 이런 밀도의 정기에는 끼어들 틈도 없는 그런 계절이다. 여름이다.
새로 성장한 잎들이 겹겹이 뜨거운 햇살을 다 받아내고 팽팽한 적막을 지켜내고 있다.
그 적막 속에 보인다. 마치 하늘로 다시 오르는 눈이나 흐리게 사라지는 유성과도 같은 모습과 색들이 천천히 흐르는 듯 나는 듯 하는 것을. 아니 떠다니는 듯, 쓸며 미끄러지는 듯 내리고는 하는 것들을. 없다고도 할 수 있을 듯 보드라운 것들이 믿을 수 없이 느리게, 소리도 없이 지고 있다.
숲은 이제서야 보내고 있다. 몇 해를 묵어 다 사그러진 갈참나무 잎사귀며, 나방이 애벌레였을 때 지어둔 실천막 쪼가리며, 나무껍질에 붙은 채 풍화를 거듭한 수액 필름이며, 알껍질에 붙었다 떨어진 어미새의 솜털 같은 것들, 마른 쭉정이, 먼지, 티끌, 그 무엇도 아닌 것같은 것들을 놓고 있다. 이 미련한 사람의 눈 속으로 불티처럼, 검광처럼 찰나로 날아든다. 한없이 가볍고 가여워서 눈물도 나지 않는다. 숲은 가을이 아니고 이 여름까지 품었다가 천천히 작별하고 있다.
저희 시아버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근황의 질문에 대신하여 올립니다.
김송희
김송희
김이박
중학생 시절, 꿈인지 헛것인지 모르겠지만 부산 금정산 중턱에 있는 우리 집을 향해 피눈물을 흘리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본적이 있다. 형의 손목을 낚아채며 눈이 뒤집힌 채로 경기를 일으켰고 (어린 시절부터 헛것을 많이 보았음) 네발로 기어서 다락방 계단을 올라갔다고 한다. 계단 난간 사이에 삐죽 얼굴을 빼고 눈이 뒤집힌 채있는 덩치 큰 아들을 부모님도 두려워하셨다고 한다. 결국 해병대 출신 아버지께 뺨을 석대 맞고 기절을 했다.
그리고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날 새벽인 1995년 1월 17일 화요일 5시 46분 52초에 일본에서 고베 대지진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한다. 어머니께선 외갓집 어른들이 큰 배가 나갈 때, 안녕을 비는 무속인 (세습무)들이 계셔서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씀하셨지만 성인이 되기 이전엔 이런 이야기를 꺼내긴 두려웠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한 기억. 그리고 3년 전, 외갓집에서 마지막으로 신을 모셨던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나선 헛것도 이상한 기운도 느끼지 못하는 둔감(?)한 사람이 되었다.
허선희
열한살의 여름, 먹성이 좋은 나이였지만 그날은 밥을 미뤄두고 바다로 나갔다. 남동생과 나 사이에서 어머니의 평등하지 않은 태도에 마음이 자꾸만 상했고 동네 어른들의 농이 사실은 진짜가 아닐까라는 고민에 다다랐다.
야야, 니는 이집 아가 아닌가보다. 니만 얼굴이 다르네. 저기 다리 밑에서 주워왔나.
나는 다리 밑에 누가 버리고 간 애기였나,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닌가, 아버지는 왜 아무말 하지 않는가, 할머니는 내가 불쌍해서 잘해줬나 별별 생각을 다하며 훌쩍훌쩍 울었다. 11살 작은 머리로 생각을 이어가다 돈오점수! 순간 깨달아버렸다. 아, 나는 이집 셋째딸이구나. 가서 밥먹자. 나의 깨달음은 이러하다.
애를 주워오면 아들을 데려왔을 것이다. 장손의 집안에 굳이 딸을 업둥이로 데려올 이유는 없지, 빼박 엄마 아빠의 자식이구나.
그뒤로 나는 이집구석의 가부장과 싸우기 시작했다. 제사에서 선심쓰듯 절하라고 하면 내가 거절하고, 동생과 차별하면 악다구니 쓰고, 남동생보다 내가 잘 났음을 증명(안타깝게도 너무 어렸기에)하려고 애썼다. 세계의 시스템에 빨리 눈뜨게 된 것은 가부장의 모순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학교에서의 경쟁, 시험을 거쳐서 존재 증명을 해야 하는 사회, 수직과 경쟁 성공신화. 철학이 부재한 기술, 나아가 종차별의 생태 파괴까지.
나를 다른 삶과 다른 존재, 소수성과 더 작은 것들을 보려는 태도, 질문과 의문을 품으며 살아가게 만든 첫번째 갈림길에 등장한 이슈가 성차별이었다.
그 뒤로 명쾌하게 해결된 적 없는 고전적이면서도 현재에 펄펄 살아있는 페미니즘은 어떤 영역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생생한 주제이며 물러서지 않는 데드라인이다. 운동의 이슈도 아니고 문화예술의 탐색의 대상이나 주제, 소재도 아니다. 삶의 이슈 그자체이다.
문화예술 기획을 하면서 특별하게 젠더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작업한 적은 단한번도 없다. 아이디어의 발생과 진행하는 과정, 정리하는 모든 영역에 그냥 묻어나는 베이스 같은 것, 동양화의 바림 같은 것. 그러니 더 나이들고 할머니가 되어서 죽는 날까지 아마 다 풀지 못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예술과 인간의 삶, 문화로 드러나는 것들 많은 현재 진행형의 숙제와 이슈들이 있지만 가장 밑바닥에 있는,내 삶의 모순을 첫 인식하게 만든 성차별 이슈와 페미니스트로서의 각성이 있다. 몰랐으면 조금 더 편하게 살지 않았을까, 더 맘 편한 아이의 삶을 몇년이라도 더 지내지 않았을까. 11살에 아이의 평화는 끝났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김민채
요즘은 토요일을 제외하고 거의 작업실과 집만 오가며 시간을 보낸다. 작업실에 도착하면 바로 에어컨을 트는데, 날이 더워서인지 시원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 외에는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본다. 예전에 시간에 쫓기며 봤던 책을 여유가 생긴 요즘 다시 읽고 있다. 책에서는 과학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인간성이 파괴된 환경을 보여주지만 내가 보기엔 그 안에서 꽤 괜찮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다. 다음으로 요즘 보는 유튜브는 경제, 재테크 관련 영상이다. 지금 보는 영상들이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어찌됐건 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집에서는 정리를 시작했다. 물건은 점점 늘어나는데 수납공간이 적어서 난감하다. 안 입는 옷이나 안 쓰는 물건들을 버리고, 어지럽게 놓인 물건들은 다시 정리한다. 괜찮은 것들은 당근마켓에서 판매하려고 한다. 매일 조금씩 정리하고 있는데 정리는 아마 이번 여름이 지나야 끝날 것처럼 보인다.
허선희
? 오롯이 나의 방이 있는가..
질문을 보자마자 어릴 때 호랑이 담요를 나란히 덮고 자는 세자매가 떠올랐다.
시골집 연탄 보일러 아궁이의 연기 냄새가 살짝 나고, 아래목은 지글지글 뜨거운 옛 우리집의 우리방.
여자 아이 셋이 한방에서 지내니 무섭지는 않지만 내 공간이 없어서 속상했다.
종종 마루 밑에 담배 상자를 넣어서 내 공간을 만들고 뒷뜰 창고의 항아리 안에 있기도 했다. 집에서는 더이상 만들지 못하는 나의 공간을 찾아 산으로 가서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무덤 주변에 심은 소나무 위를 기어올라갔다. 바닷가에도 큰 돌을 표시해놨다. 내 자리라고.
내 할머니, 내 아버지, 내 엄마, 내 공간, 내 책상, 내 책, 내..내...내...
가족이 많은 집에서 자라서 '나'만의 것이 갈급한 소녀는 드디어 고등학교에 가서 혼자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3학년이 되어서야. 대학을 가서도 처음 몇년은 부족한 돈을 충당하느라 친구들과 방을 같이 썼고, 서울에 올라와서 선배네 방에 기생했다.
처음으로 오로지 나의 방으로 혼자 이사간 날.
묘한 침묵과 고요와 대화할 사람이 없는 순간과 햇살이 들어오고 기우는 모든 순간이 오로지 나의 것이었다. 옥탑방, 덥고 춥고 가난했으나 내 방이라는 이유 하나로 너무 기뻤던 순간이었다.청춘은 옥탑방과 지하를 오고가다 방이 아니라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나는 이제 친구들과 집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자본이라곤 땡전 한푼 없지만 없는 사람들의 없는 돈을 모아 집을 짓겠다고 노력중이다. 영원히 집과 방이 내 것이 아닌 곳을 멤돌다 죽을 줄 알았는데 고양이도 곁에 있고 집도 원하는 컬러와 원하는 문짝을 붙여 만들게 되었다.
온전히 나의 방과 나의 집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대로 말한다. 사회인의 가면을 쓰고 웃고 일도 하고 관계를 맺지만 웅크린 담배 상자에 몸을 집어 넣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던 겁많은 사람이 큰 숨을 쉬면서 쉰다. 타인을 위해 노력하지 않지 웃지 않아도 되고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혼자 움직이고 혼자 누워있고 고양이 궁둥이나 두드려주고. 누구를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숨을 쉬는 공간이 나의 방이고 나의 집이다.
양유연
더러 동물이 나오는 꿈을 꾸는 편이다. 그리고 깨고 났을 때 기억에 남거나 기분이 묘하면 계속 그 꿈을 곱씹어 본다. 최근에는 팔뚝만 한 황금 지네가 나오는 꿈을 꿨다. 온몸 전체가 황금색으로 빛나는, 다리가 징그러울 정도로 많이 달린 지네였다. 그 지네를 나는 겁도 없이 한 손으로 잡아 들었고 이내 죽였던 듯싶다. 지네를 잡았을 때의 촉감과 묵직함은 실재인 듯 생생했다.
왜인지 모르게 다음 날 나는 복권을 샀다. 자동으로 네 개, 수동으로 하나. 또 긁는 복권 다섯 개. 이렇게 큰돈을 들여 복권을 산 건 처음이었다. 두근거리고 상기되었다. 황금 지네의 꿈 풀이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나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후 황금 지네의 꿈과 복권을 샀다는 얘기를 하니 지인이 "너 참 지금 힘들구나, 간절한가 봐"라고 말했다. 그런가? 되물어봤다. 딱히 간절하지도, 힘들지도 않다. 그렇다고 참 괜찮지도 살만하지도 않다. 어쩌면 지속적인 무기력과 권태감이 일상에 대한 감각을 둔하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러한 꿈을 꾸었고 그로 인해 복권을 샀다. 좋은 꿈을 꾼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감에 두근거리던 예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물어본다. "그 꿈으로 인해 기대했던 행운은 뭐야."
김송희
점점 더 자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되겠지.
많이 많이 봐둬야지.
보드랍고 말랑한 귀와 따뜻하고 촉촉한 코와 둥그런 등과 엉덩이
그리고 작은 숨소리와 가만히 손을 대면 기대어오는 무게감과 온기, 모든 것을.
움직임이 적은 무언가를 질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이것도 사랑이 아닐까.
애정하는 시선으로 오래오래 바라볼 수록 끝없이 애정이 길어올려진다.
그러고보면 어떠한 마음이 ‘샘 솟는다’는 말은 누가 처음 했을까.
참 적절하고 예쁜 표현이다.
최장원
〈움직여야 불이 켜지는 조명등처럼〉
출판사 편집자님과 첫 번째 미팅을 했다. 나는 그 자리에 무지개 마스크를 썼다. 편집자님은 ‘마스크 제작하신 거예요?’ 하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냥 구입한 거라고 답했다.
미팅을 끝내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남자친구의 차에 탔다. 나는 조수석에 앉았고 안전벨트를 멨다. 남자친구는 “오늘 무지개 마스크 썼네?”라고 했다. 그는 “멀리서도 게이인 거 알겠다~”라고 말했다. 그가 신경 쓰는 것 같아서 나는 다음에는 까만색 마스크를 쓰겠다고 했다.
나는 그와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그의 집으로 갔다. 주차장에서 우리 둘은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우리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의 집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집이 있는 층에 있는 이웃집은 현관문 바깥에 십자가를 붙여 놓았다.
그와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가려 하는데, 그가 뜯지 않은 하얀색 마스크 한 뭉치를 주려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그는 이게 귀가 안 아프고 편하다고 했다. 나는 작업실에 이미 빨아서 여러 번 쓸 수 있는 까만색 마스크가 있다고 괜찮다고 했다. 그는 한 번 더 권했다. 나는 그러면 한 개만 달라고 해서 지금 쓰고 가겠다고 했다.
그의 집 밖으로 나가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복도의 감지등이 잠깐 켜졌다가 꺼졌다. 다시 그 조명등이 켜지게 하려면 나는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나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있었다. 그는 뭔가를 챙기느라고 나보다 조금 늦게 복도로 나와서 내 옆에 나란히 섰다.
나는 알았다.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나는 모든 사람이 나처럼 게이인 것을, HIV감염인인 것을 드러내고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도 내가 조금 가라앉은 기분인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는 “나는 오픈되어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잃을 것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면 항상 조금 더 오래 씹어보게 된다.
차 안에서 그에게 내가 곤약을 먹었던 일을 얘기했다. ‘내가 체중을 감량해 보고 싶어서 곤약을 먹었던 적이 있었어. 곤약은 저칼로리라서 좀 많이 먹어도 되는 줄 알고 많이 먹었는데, 곤약은 원래 소화가 잘 안 되는 데다가. 그게 뱃속에서 계속 뿌는거야. 그래서 삼일동안 내내 계속 토하고 체한 상태여서 너무 힘들었어. 내가 소처럼 되새김질할 줄 안다면 훨씬 나았을텐데.’ 나는 조수석에서 왼손을, 그는 운전석에서 오른쪽을 내밀어 서로의 손을 잡았다. “나와 함께 가장 게이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다니!” 그가 되물었다. “게이 같은 행동?” “아니, 서로의 음경을 핥잖아!” 그가 웃었다. 우리는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서울역 즈음에 다다랐다. 나는 느끼한 말투로 말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그가 대답했다. “해방촌으로. 그런데 왜 해방촌이지? 난 잘 몰라.” “어딘가를 떠나온 사람들이 모여 살 게 되었으니깐.”
그가 운전하는 차는 나의 작업실에 거의 다다랐다. 나의 작업실로 향하는 길은 좁고, 꼬불꼬불해서 차가 들어가기 어렵다. 그는 오거리에 나를 내려준다고 했다. 나는 데려다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가 클로짓게이인 것을 서운해할 수 없다. 나는 그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서 이야기했다. “이것 참! 무지개 혁명만이 답이다! 내가 청와대 꼭대기에 프라이드 깃발을 꽂을 것이야! 내가 어? 한탕 크게 해서 형한테 한 자리 줄게! 문체부장관 어때?” 그가 웃었다. 차는 오르막길을 다 올랐다. 오거리에 도착했다. 우리는 잠시 유리창이 썬팅 된 차를 세우고 마스크를 내려 뽀뽀를 하고 다음에 또 보자고 작별 인사를 했다.
김송희
잊지도 않았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_2014년 4월 16일 이후 매년 4월에 쓰는 일기, 혹은 편지.
2015.4.11
벌써 몇해 전 일인지 모르겠다.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지금의 내가 열여덟 혹은 열아홉의 나를 만나러 갔다. 어린 나는 교복을 입고 교실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어찌나 슬프게 우는지 꿈을 꾸는 지금의 내 목이 아팠다. 나는 어린 나를 토닥이며 다 괜찮아질 거라고 나는 앞으로 지금과 다른 세상에서 나의 삶을 살게 될거라고 얘기해줬다. 꿈을 깨고서 정말 그렇게 됐구나 싶어 조금 울었던 것 같다.
그랬다. 그때의 나는 괴로웠지만 그래서 더 꿈이 많았다. 친구들도 막연하지만 하고싶은게 많았다.
우리는 '스무살이 되면...'이라고 시작하는 말들이 점점 더 많아졌었고 자주 웃고 자주 울었다.
열여덟 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 수백명이 가라앉는 배 속에 '가만히 있었다.'
아이들은 스무살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미안해, 가만있지 않을게 했는데, 가만가만 벌써 1년이 지났다.
아프고 비틀거리더라도 봄은 꼬박꼬박 돌아오고 잊지 않고 꽃을 피우는구나.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 후 일본 '백만인의 어머니' 중 한 어머니는 '왜 이런 세상에 너를 낳았을까' 자책했다.
열여덟, 많던 적던 그보다 여러번 봄꽃을 보며 설렜던 우리는 2014년 4월, 수백명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우리는 왜 이런 세상을 만들었을까.
최장원
하룻동안 식재료에 사용할 수 있는 20만원이 생겼습니다. 20만원을 사용하여 오늘의 식탁을 어떻게 꾸릴까요? 누구를 초대할까요?
요즘 로맨스관계에 있는 그 사람을 불러서 비싸고 맛있는 식사를 함꼐하고 싶다.
평소에 먹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주문해서 먹거나, 함께 요리해서 먹어보고 싶다.
질 좋고 신선한 야채구이, 좋은 향이 나는 버섯요리, 좋은 술 같은 것들...
허선희
고등학교 입학 이후로 태어난 집과 동네를 떠나 부유하는 삶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곁에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두지 않고 그때마다 집세를 나눠 낼 수 있는 가까운 친구와 산다던가 혹은 혼자 산다는 선택이 있었을 뿐. 서울에서의 이십년의 생활을 돌아보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자세와 짐을 덜어내는 과정이었다. 머지않아 탈서울 해서 자연 가까이 살아야지, 아니지 서울에서 밀려나게 될거야 라는 소망과 불안 사이를 오갔다. 요즘은 몇몇 친구들과 함께 사는 집을 고민하고 준비중이다. 이유는 나의 서울 생활의 질을 높이거나 조금 더 안정적인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내 곁의 있는 존재 때문이다.
7년 전 마음을 다잡아 먹고 구조한 고양이 자매 둘을 데리고 온 뒤로 다른 세계가 열렸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크기가 다르고 움직임이 다른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으로 집을 채웠고, 동물영양학을 파고들고 행동학을 공부했다. 대신 고양이 자매는 나를 매 순간 관찰해서 나의 행동에 반응한다. 우리는 서로 인생과 묘생에 관해 각자의 종의 특성에 맞게 공부하고 있다. 고양이는 생태를 향한 나의 태도를 실천으로 이어가게 안내했고, 더 소수의 감수성을 키우고 있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그아이들에게는 지독히 사랑스럽지만 너무 커서 무서운 인간이다.
내가 집을 고민하는 이유는 이사를 하고 변화를 하는 과정이 아이들에겐 공포의 순간이기 때문에 더 많이 나이가 들기 전에 오랫동안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두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아이들 만큼 일년마다 나이가 들어가는 나를 위해서도.
어떤 존재가 나같은 고집쟁이의 삶을 단 몇년만에 뒤집어 놓을 수 있을까. 언어의 세계에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비언어, 몸으로, 눈빛과 에너지로 교감하는 동물은 오만하지 않게 세상을 만나게 하고 나와 다름을 수용하라는 대단한 스승이다.
그리고 인간은 사랑을 받는 것이 어떤 거대한 화두이지만, 사랑을 받는 것 만큼 사랑을 하는 것이 비슷한 크기로 작용해야 결핍이 사라지는 것 같다. 균형을 잡고 사는 것. 깊은 사랑을 받고 살게 되니 좀 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인생이 둥글어지니 문제는 매사 뾰족함과 날칼로움이 특성인데, 무뎌지니 섬세하고 떨리는 감수성에 사라잡히는 회수가 줄어든다. 어쩔 수 없지,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잃는 것. 그런데 그 하나가 너무 좋아서 두어개를 잃어도 아쉽지가 않네..
리타
언젠간 읽겠지 리스트
진지현
허연화
최수진
느지막이 일어나서 조금 꼼지락 거린다. 친구가 강아지를 맡긴 날에는 조금 일찍 일어나 강아지 밥을 챙겨주고 누워서 같이 놀다가 다시 잠들곤 한다. 늘 아침형이고 싶었지만 30년 이상 나를 돌아봤을 때 오전 시간에 정신이 맑았던 적이 없다. 수면 시간이 하루 컨디션에 엄청나게 영향을 미치는 편이고 평균 수면 양을 조금이라도 못 채우면 머리가 멍한 채로 하루를 보내게 된다.(단 여행지에서는 완벽한 아침형 인간이 된다. 그냥 눈이 떠진다.) 씻고 냉장고를 열어 식재료를 확인한다. 내키는 날에는 공들여 브런치를 만들어 먹는다. 또띠아에 스리라차 소스와 마요네즈를 섞어 바르고 채소와 달걀, 올리브, 토마토 등등을 넣고 먹는다. 케일 주스, 오트밀, 식빵, 과일을 먹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브런치 스타일이 조금 달라진다. 추워지면 수프를 끓이거나 누룽지를 끓여먹기도 한다. 미팅이 있거나 일이 있는 날에는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간다. 일이 없는 날엔 집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좋아하는 아이돌 무대 영상들을 찾아보며 뇌를 활성화시킨다. 매번 달라지는 무대와 의상 컨셉을 체크하는 것을 즐긴다. 대충 뇌가 활성화되면 메일을 확인하고 해야 할 업무들을 본다. 해야 할 업무들이 있을 때 매번 마감일까지 버티는 편이다. 가볍게 동네를 산책하고 들어와서 작업 준비를 한다. 정말 가끔은 집 앞 낮은 산에 올라간다. 산에 올라가면 보상 심리로 바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굳이 뒷동네로 내려가 등산객들이 많이 가는 식당에 가서 들깨 메밀수제비나 메밀묵사발을 먹고 먼 길을 돌아서 집으로 돌아온다. 유화 작업을 잠시 쉬는 기간에는 요리에 집중하는 일이 잦다. 식재료를 보면 색과 형태가 예뻐서 그림 속 정물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요리하는 순간들을 작업과 연결시킬 때가 많다. 작업 모드 일 때에는 종종 사 먹거나 간단한 요리를 한다. 유화로 손이 엉망일 때가 많아 요리하기가 꺼려진다. 요즘은 집 근처에서 콩국수랑 김밥을 자주 사 먹는다. 식당에 혼자 가도 메뉴 두 개를 시킬 때가 있다. 배가 든든하고 코어에 힘이 들어간 완벽한 컨디션이 되면 작업을 시작한다. 저녁을 먹고 자기 전까지 느슨하게 작업 모드를 유지한다. 중간중간 요가매트를 깔거나 소파에 누워서 아이패드로 오목을 한다. 인공지능과 오목을 몇 판 두다 보면 나름의 리프레시가 된다. 내가 뭐하고 있지? 이제 작업하자 하는 내면의 소리와 함께 다시 붓을 드는데, 이런 사이클이 작업을 하면서 대여섯 번을 도는 것 같다. 일찍 잠들지는 않지만 12시 이후가 되면 코어 힘과 집중력이 급격히 하락세로 들어가고 붓을 씻거나 노트북으로 필요한 것들 쇼핑을 하거나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며 뇌를 자기 전 멍한 상태로 만든다. 운동을 하진 않으면서 관련된 소품들을 구경하고 사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선 아 내일부터는 운동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서서히 취침.
김실비
삶과 일을 어떻게 병행하고 계신가요? 삶과 일은 생활 속에 대중없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미술 작업이 완성되기까지 결부되는...
삶과 일을 어떻게 병행하고 계신가요?
삶과 일은 생활 속에 대중없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미술 작업이 완성되기까지 결부되는 직업적 관계들을 인정하고, 가급적 일은 일로 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에는 기본적인 직업윤리 그리고 타자와 나와 환경을 착취하지 않으려는 일상적인 노력이 전제된다.
좋은 미술은 무엇일까요?
자신만의 현실인식과 철학이 시대를 읽는 태도와 형식의 실험으로 드러나는 것.
끊임없이 머릿 속을 맴돌지만 외면하고 있는 의문이 있나요?
투기 자본의 정체와 노후 대비.
모든 예술이 익명으로만 공개된다면 당신은 예술 활동을 이어갈 것 같나요?
그렇다. 최초의 동굴벽화가가 이름을 남기지 않았고, 최초의 미술이 공동의 제의를 위해 발생했듯이 저자성과 커리어는 미술의 핵심 가치와는 거리가 있다. 활동과 생활을 지속하려면 이에 대한 고려가 불가피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집착하다보면 시시한 작태를 일삼는 사람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작가로 존속하려면 자신의 안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춰야 하는 부분이다.
만약 그렇다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계속 변화하는 공공을 향하는 시뮬레이션.
한동안 자가 격리로 인해 어느 곳도 가지 못하고 누구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문밖을 나서서 당장 어디로 향할까요? 또는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요?
교외의 숲으로 나가서 땀이 나게 하이킹을 한 후 해질녘 호수에서 헤엄을 치겠다. 꼭 누군가를 만나야 하지는 않지만 믿는 친구 두엇과 함께 가겠다.
개인과 공동체는 공존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공동체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개인이 향유하는 문명의 모든 부분이 생태와 사회의 여러 공동체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극소화된 개인으로서 소비만을 계속하다보면 이 사실을 잊기가 쉽기 때문에 자꾸 상기할 팔요가 있다
최하늘
정덕현
휴일
작년 나는 3년간 일해 온 직장이 없어지면서 간간이 들어오는 알바를 제외하고 일을 하지 않았다. 올해 초에는 작업실을 구하지 못해 4개월 정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미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후 이렇게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휴일이었다.
월요일, 화요일은 조카와 놀았다. 월, 화는 형과 형수가 다 일하는 날이어서 부모님이 아이들을 봐주신다. 조카는 나에게 늘 말하기 놀이를 하자고 한다. 말하기 놀이란 장난감이나 인형을 가지고 말하며 노는 것이다. 장난감의 종류에 따라 말하는 주제가 달라지는데 장난감 또봇을 가지고 오는 날은 주인공과 악당으로 대립하여야만 한다. 만날 나에게 악당을 시킨다. 나는 어른의 화술로 주인공을 더 악당이 되게 만들어버리고 조카를 울리곤 한다.
수요일, 일요일은 등산한다. 주로 용인 법화산을 오르는데 등산로 입구에서 1시간이면 정상을 찍는 동네에 있는 작은 산이다. 정상에서 봉우리를 하나 더 넘으면 천주교 공동묘지가 나오는데 그 풍경이 어느 공원보다 아름답다. 무덤들을 바라보며 샌드위치 하나와 맥주를 마신다. 산 사람은 먹어야 하니까.
목요일에는 특식을 만든다. 우리 집은 각자 식사하는 시간대가 달라서 가족들이 겸상을 안 한 지 오래다. 내가 먹을 것은 직접 만드는 편인데 목요일은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특별한 음식을 해 먹는다. 나는 그때그때 주변에 있는 재료를 접목하는 냉장고 비우기 스타일이라서 다음에 똑같은 맛을 만들어 내는 건 잘하지 못하지만, 맛은 항상 훌륭해서 신기하다. 마치 길치가 느낌대로 걸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함같이.
금요일, 토요일은 종일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텔레비전과 휴대폰에 흥미가 떨어지면 책을 읽는다. 가끔은 너무 누워있어서 등이 아프다. 어쩌다 약속이라도 생기면 아주 기분이 좋다.
두 달 전부터 친구 작업실에서 드로잉을 하고 있다. 또 두 달 전부터 성인 취미 미술학원에서 밤에 일한다. 작업실도 계약해서 8월부터는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다행히 그릴 것들도 머리에 가득하다. 휴일은 끝났다.
홍은아
평일에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그림 그리기에 대해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때로 고민하는 시간이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길다. 아침에 집을 나서서 밤 10시쯤에 퇴근한다.
주말은 추진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준비 및 진행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산책하고 집안일을 한다. 사실 주말의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다. 평일 밤에 일을 분배하려고 노력 중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매일 새롭고, 어렵다.
생각이 전환되는 시점에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렇지만 생각이 전환되는 일은 좀처럼 흔한 일이 아니다. 아주 미세한 생각의 변화들이 쌓여서 큰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시간이 긴 것 같다. 그렇지만 가끔 뛰거나, 산책할 때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보통은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한다.
최근 고민하는 시간이 줄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늘었다. 이 글을 최초로 쓴 후로 약 한 달여 간의 시간이 흘렀는데, 그간 작업의 진전이 좋았던 것 같다.
무한한 가능성에 마음을 여는 것이 오랫동안 힘들었다. 무한함이란 쉽게는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여러 각도로 볼 때, 항상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그리고 그 선택 아래 거대한 두려움이 도사린다.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에서 이 두려움을 넘어 선 것 같다. 더 진행해보면서 구체적인 방법들을 찾게 되겠지만, 현재의 해방감에 꽤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괴롭고, 즐겁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시작된 지 모르는 환상이 자꾸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풀도록 이끄는 것이 나에게 있어 그림 그리기이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할 줄 아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체도 모르는 것을 찾는 중이라 매번 어렵기만 하다. 그러다 해결책을 찾은 것 같아서 뛸 듯 기쁘다가도 경솔한 환희였음을 깨닫고 실망하기 일쑤이다. 그래도 조금씩 걸러지는 것들이 있어서 손을 놓기가 어렵다. 사실 이 어려운 과정이 괴롭고, 즐겁다.
자잘한 좌절과 타협의 순간이 끊임없이 온다. 작업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인간관계,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로부터 다양한 이유로 겪는다. 최근에는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가 여전히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직면한때 좌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이러한 좌절 앞에서의 타협은 결국 내 마음속 이상과 여러 가지 현실적 방안들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는 것일 것이다. 되도록 좌절 앞에서 희망적일 수 있는 타협을 하도록 노력한다.
내게 식자재를 위한 20만 원이 생긴다면, 신선한 도미와 가자미, 주꾸미, 새우를 잔뜩 사서 굽고, 다양한 버섯, 아스파라거스, 가지, 껍질 콩, 아티초크, 샐러드용 야채, 시트러스 과일 등을 사서 요리하고, 공을 들여 빵을 굽고, 맛있는 와인도 몇 병 따서 친구들과 즐거운 식사를 할 것 같다. (참고로 베를린의 식자재값은 서울보다 저렴한 편이다.)
최장원
모든 예술이 익명으로 공개된다면 당신은 예술 활동을 이어갈 것 같나요?
지금 나는 HIV감염인 당사자의 얘기를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내 이름과 내 관계들을 다 공개적으로 얘기하며, 이 작업을 하고있고, 그래서 이 것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모든 예술이 익명으로 공개'해야한다'면 예술 활동을 하기야 하겠지만, 나는 다른 방식의 예술을 생각 할 것이다.
최진욱
쓸데없는 짓?
나는 회의를 좋아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논쟁 과정을 짜릿하게 즐기는 것 같다. 정년을 앞두고 한 4년 정도 교수회의에 들어가지 않고 있는데, 이유는 내가 가장 연장자이기 때문에 싸우는 맛이 없기도 하고, 또 흥분하면 혈관이나 심장에 안 좋을까 염려되어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가장 나이 많은 자가 꽥꽥거리는 모습은 추하다. 회의를 하면서 논쟁을 즐기는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말은 ‘다수결로 합시다’일 것이다. 그런데 회의가 한창 달아오를 때, 꼭 이렇게 외치는 자들이 있다.
미대학장을 맡았을 때, 학생들의 글쓰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글쓰기 과목을 교양에 따로 개설하려고 과목 이름을 교수회의에서 의논했었다. 나는 ‘비평적 글쓰기’가 좋다고 하고, 다른 교수들은 ‘창조적 글쓰기’로 하자고 해서 논쟁이 길어졌는데, 또 다수결로 정하자고 외치는 사람이 나왔다. 그래서 압도적 차이로 ‘창조적 글쓰기’가 과목명이 되었다. 나는 교수들이 회의장을 빠져나간 후, 허탈하게 앉아 있다가, 문자를 돌렸다. 창조적 글쓰기가 기존의 글쓰기라면 비평적 글쓰기는 작가의 글쓰기라는 취지로. 그리고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작가적 글쓰기는 곧 비평적 글쓰기이고, 좋은 작가는 누구나 글을 잘 쓴다. 이상할 정도로. 그런데 창조적 글쓰기(기존의 작문수업)에 시달려 본 미대생이라면 대체로 글쓰기에 자신 없어 한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일과 정확한 글쓰기는 맞닿아 있다. 미술을 한다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말한 글은 잘 쓴 글이 된다. 드로잉 속에 세 사람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반쯤 누워있다.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두 사람이 한 사람을 비난하고 있는 장면이다. 한 학생이 작품 계획으로 가져온 드로잉을 보고, 그림의 구도가 보기 좋으냐(아름다움)의 문제보다 하고자 하는 얘기가 정확히 드러났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과 더불어-순간적으로-‘미술이란 말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림이야 잘 그릴 수도 있고(일러스트레이션, 만화), 아름답게 그릴 수도 있다(디자인, 공예). 그러나 그렇다고 미술이 되는 건 아니다. 말을 정확히 해야 미술이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마지막 수업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20학번 학생들은 처음부터 비대면수업으로 만났는데, 역대 1학년 학생들이 강의평가에서 최하점수를 준 데 반해, 비대면수업 덕인지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제 2학년이 된 그들이 선택과목인 ‘회화기법’을 많이 선택해줘서 거의 전원을 2학년 수업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몇 년 전엔 수강생이 적어서 폐강된 적도 있었던 과목이다.) 달걀로 그리는 ‘에그요크템페라’와 르네상스 이후, 인상파 이전의 ‘글레이징 유화기법’을 공부하는 과목인데, 무엇보다 정성이 필요한 수업이라, 학년마다 수업 분위기에 따라 결과물의 수준차가 큰 편인데, 이번 학년은 최상의 결과를 보여줬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수업이라니 얼마나 행운인가! 교수가 잘 가르치건 말건 학생들의 작품이 따라줘야 하기 때문에 미대교육의 성패는 전적으로 학생들 자신에게 달려있다.
자주 보는 장면이지만, 미대 졸업생들이 미술을 그만둔다고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동안 쓸데없는 짓 했다." 그러나 미술이란 원래부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짓이 아니라면 그것은 미술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쓸데없는 짓을 할 때 뿐이다.(인간이 동물과 달리 현재의 문명을 일굴 수 있었던 것도 ‘없는 것’에 대해 언어로 나타낼 줄 아는 능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가 될 수 있는 특권을 쉽게 내팽개치는 졸업생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작가가 되는 특권을 굳이 버릴 필요가 있나? 뭔가 인생에서 새 출발을 하려면 그렇게 양심선언을 하는 법이지만,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외침의 화살 절반은 미술을 향하고 있으니 양심선언도 아닌 셈이다. 미대를 선택한 자신에 대한 분노에 더 가깝다. 미술은 쓸데없는 짓이다. 그러나 바로 쓸데없는 짓이기 때문에 매력이 있는 것이다.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론상으로는 알지만, 현실에서는 잘 체감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미술이 아직 이렇다 할 ‘비평의 집’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미술이 비평의 집을 가지고 있다면 작가를 그만두면서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나는 저 집에 들어갈 수 없어.’
비평의 집을 가지고 있지 않은 미술판에 오로지 통하는 것은 ‘명성’이다. 미술판에서 명성을 얻지 못하면 그 작가의 작품은 쓰레기가 된다.(쓸데없는 짓이 된다.) 그러나 이 말엔 어폐가 있다. 비평의 집이 없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만약 비평의 집이 있다면 비평적 가치에 따라 높건 낮건 비평의 집에 들어갈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쓰레기가 되지 않는다. 명성이 높은 스타작가만 살아남는 것으로, 대중들은-기자, 화랑주, 구매자들도 포함하여-미술판을 알고 있는데, 이것은 오해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비평의 집이 있다면 거의 모든 작가가 살아남는다. 비평의 집이 클수록 미술시장도 커진다. 최소한으로 쪼그라든 현재의 미술시장에서도 작가가 싸구려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는데도 살아남았다고 광광대지 않던가?
이성민
**이 글은 마치 그날들의 일기처럼 각색되어, 다소 의식의 흐름대로 작성된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02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 시간은 대략 저녁 7시 30분이다. 마무리 되어가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귓등으로 들으면서 오늘은 배송량이 많지 않았으면.. 하고 기도한다.(난 무교다) 규정상 9시 30분까지 도착해서 일을 시작하면 되지만, 집에서 직장까지 차로 20분 거리에 사는 나로서는 서둘러 출근하는 모양새다. 캠프에 도착하면 약 8시. 이미 출근해 있는 동료들이 10명 정도 있다. 우리 구역은 배송기사들이 하루 평균 30명 정도라고 볼 수 있는데 벌써 약 30%의 인원들이 출근해 있는 것이다. 성실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남은 1시간 반 동안 오늘 함께 할 배송 차량을 선택해서 찜하고(가능한 탑차 내부 등이 이상 없이 들어오고, 기름이 가득 차있고, 에어컨이 빵빵하고 결함이 없는 차량을 선호한다. 이건 오늘 내 차야! 하고 동참한 가방을 조수석에 위치시키면 찜 한 것이다.), 차량의 기능적 점검을 한다. 어플을 사용해 확인한 사항에 대해서 각종 보고서를 작성해서 업로드, 그 후 오늘 마실 음료수를 쟁여놓고(캠프 내부 자판기에서 355ml 음료 한 캔을 300원에 판매한다.) 사람들과 인사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흡연자는 흡연을 비흡연자는 휴식(핸드폰과 함께하는 명상)을 한다. 9시 25분이면 내가 배송할 구역이 정해진다. 아... 오늘은 고생하는 날이구나. 매일 같은 체념을 하고 9시 30분에 나와 비슷한 표정을 띈 동료들이 모두 모여 스트레칭을 한 후 요 이 땅! 해서 각자의 책임이 실린 롤테이너(배송 박스와 비닐이 내 키만큼 가득 담긴 수레)를 찾아 뿔뿔이 흩어진다.
자, 이제부터 나와의 싸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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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의 밤거리는 이상하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한가운데에
젊은 사람들은 거리에서
밤바람에 열을 식히며 맥주를 즐기고,
자영업자들은 피곤한 표정으로
가게 정리를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상할 거라곤
하나도 없는 거 보니
내가 이상한가 보다.
10시 정도면 내가 배송하는 구역의
반 정도 되는 가게가 불을 밝히고 있지만,
11시 정도면 80%의 가게가 어두워진다.
휘황찬란하던 모습은
꿈이었던 것처럼 어둡다.
그쯤 되면 나는 비현실적 거리에서
마음 편한 한마리 배송 맹수가 된다.
대략 10가구 정도 배송을 한 후여서 땀도 좀 나고
몸이 풀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거리에 장애물(미안하지만 대부분이 사람들이다)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배송 물품을 끌어안고
계단도 막 두 칸씩 뛰어 올라가서
물건을 딱 놓고 사진을 쫙 찍어서
약 1,150원을 번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지난주보다 10가구 배송하는데
시간이 5분 정도 단축되었다.
익숙해 진 탓인지
몸무게가 감량되어서 인지
아니면 체력이 붙은 것인지
지구의 중력이 줄어든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나를 감싼다.
아무튼 아무것도 나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
.
두 시간이 흘렀다.
이제 얼마나 배송한 것인지
얼마나 남았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비어있는 거리는
각종 업체의 새벽 배송 기사들과
배달 오토바이 기사들의 것이다.
이성민
**이 글은 마치 그날들의 일기처럼 각색되어, 다소 의식의 흐름대로 작성된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01
오늘도 출근을 알리는 달이 떠오른다. 나는 차에 올라탄다.
아직은 해가 완전히 저물지 않았지만 모두가 '저녁시간'이라고 인정할 만한 하늘색이다.
내가 쿠X 새벽 배송 일을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다.
또한 새벽 배송에는 무거운 물건들이 없다는 소문도 선택에 큰 몫을 했다.
일은 쉽게 하고 싶었던 얄팍한 생각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입사 면접에서 새벽 배송 자리가 있다고 했고,
하겠냐? 해서 하겠다 고 했을 뿐이다. 당시 나는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청년이었다.
원래 나는 나무 그릇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어디선가 누군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나는 그냥
목수일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사실 나무 그릇을 만드는 일은 목공예에 가깝다.
나무를 기계에 물리고 고속으로 회전시킨 후에 돌아가는 부재에 칼을 대서 깎는 과격하면서 동시에 섬세한(?) 방식으로 한국에서는 '갈이'라고 불리고 외국에서는 'woodturning'이라고 불린다.
주로 제사에 쓰이는 제기를 생각하면 이해하실 수 있으실꺼다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말이 너무 길어지고, 말이 길어지면 귀찮아하는 성격 때문에 나는 그냥 목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인테리어 업자 정도로 생각을 한다.
쿠X 배송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원래 어떤 일하셨었어요?
배송 시작 전 잠깐 짬이 나는 시간에 같이 음료수를 마시며 물어본다.
요리사, 호텔리어, 가정주부, 직업군인, 백수, 프로그래머
나랑 같은 업종은 아니지만 어쨌든 목수, 인디 뮤지션,
실 만드는 사람, 그 실로 천 만드는 사람, 그 천으로 만든 옷 팔던 사람 등등
우리 주변에 숨어 있을법한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것 같다.
각자 저마다의 사정으로 이곳에 모였다.
내가 일하는 쿠X 캠프에서는 모두가 물건을 상차하기 5분 전 각자의 차량 앞에 서서 대기한다.
사람들의 대열만 보자면 타원형으로 서로 바라보고 있는 꼴이다.
곧이어 방송이 나오고 구령에 맞추어 목, 어깨, 손목, 허리, 무릎, 다리 순으로 정해진 스트레칭 동작을 함께 한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퇴근하면 남이 되는 나의 동료들의 면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들 고생 많으십니다.
서다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