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구라는 생명공동체 안에서 질경이나 구름과는 달리, 사람은 말로써 득세(得勢)하였으니, 어떻게든 이야기를 지어내지 못 하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겠지. 말을 부리는 족속이 세상을 제 손아귀에 넣게 되는 법이니 이래저래 사람은 말을 할 줄 알아야 하겠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근 2000년 인류세(人類世)는 그야말로 말(문자/언어)이 갖가지 재주를 부린 세월이라고 해야겠지. 그래서 사람이 세상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겠지. 그런데 서가(書架)를 쳐다보고 있자면 왜 멍해지는가. 사람이 갈 길이 저 말숲(말로 지어진 숲)에 숨어있을까? 말숲에 살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 정교하고 체계적인 온갖 말/이야기를 한편으론 지어내고 한편으론 그것에 휘둘리기도 하면서 사람은 얼마나 지혜로워졌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