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민

이창민

11/24/23
송신규 개인전 《나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합정지구, 11.4 –29. ⠀⠀⠀⠀⠀⠀⠀⠀⠀⠀⠀⠀⠀⠀⠀⠀⠀⠀⠀⠀⠀⠀⠀⠀⠀⠀⠀⠀⠀⠀⠀⠀⠀⠀⠀⠀⠀⠀⠀⠀⠀⠀...

송신규 개인전 《나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합정지구, 11.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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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에 위치한 합정지구에서 송신규 작가의 개인전 《나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가 개최되고 있다. 춘천 출신 작가 송신규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회화 13점과 드로잉, 애니메이션을 선보인다. 《자연으로 돌아가다》(토지문화관 박경리 작가의 집, 2020), 《풍경의 뼈》(KT&G 상상마당 춘천, 2021), 《인간과 고향》(박수근 미술관, 2022) 등의 개인전을 통해 그는 개발로 인해 변해버린 자신의 고향, 땅, 그리고 생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이전 전시가 유년기의 기억과 다른 고향의 풍경처럼, 물리적 공간과 지역에 집중했다면, 이번 개인전에서는 신작과 구작을 망라하여 일상의 고민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전시장 1층에는 작가의 최근 회화 작업 7점과 영상 작업이 설치되어 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는 상실감에서 비롯된 작업이기 때문인지, 분위기가 사뭇 무겁다. 눈에 띄는 것은 벽에 나란히 걸린 두 점의 작품(<기억의 터>, <나무 위에 걸쳐진 거처>)과 제목이다. <기억의 터>(2023)는 황량하고 메마른 공간에 있는 나무 몇 그루와 집을 검붉은 톤으로 그렸고, <나무 위에 걸쳐진 거처>(2021)는 숲 속의 나무 기둥과 가지에 걸쳐진 지붕을 그렸다. 작가는 작품 제목에서 그것이 ‘거처’라 하지만, 간신히 비바람만 피할 수 있는, 형태도 온전하지 않은 부서진 지붕에 가깝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집’ 혹은 ‘거처’라 부르는 것들은 대게 이렇다. 어느 부분이 빠지거나, 불안하고, 허술하다. 기억에 잔상처럼 남아있는 장소와, 나뭇가지에 걸쳐 무너져가는 지붕을 떠올려보면, 한없이 가볍고 불안해서 머지않아 없어져 버릴 것 같지만 두 작품에서는 무겁게 내려앉는다. 여러 겹의 물감 층, 그 층을 긁어내 생긴 상처들, 시간이 지나 생기는 물감 표면의 균열, 탁한 단색조가 그 무게를 만든다. <잡초>(2023), <땅으로부터>(2021)에서도 물감을 켜켜이 쌓은 후 긁거나 파낸 흔적이 보이는데, 이러한 흔적과 밀도 높은 그의 표현 방식은 삶과 기억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의 모습을 대변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송신규의 그림은 조금 투박하다. 진부할 수 있는 땅이라는 소재와 작품 표현 방식, 숨기거나 꾸미는데 익숙하지 않은 그의 태도에서 젊은 작가의 세련됨은 찾아볼 수 없고 진지하고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작가만 보일 뿐이다. 작품의 주제인 고향과 땅, 집에 대한 작가의 집착 역시 온전히 공감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것을 잊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에 눈길이 간다. 땅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 곳에서 시간을 보냈던 작가의 기억은 <나무 위에 걸쳐진 거처>의 지붕이 하나하나 뜯겨져 나가듯 점점 희미해질 것이고 작가는 그게 두려웠을 것이다. 단단하고 꾸밈없는, 어쩌면 틀에 박힌 그의 그림 스타일은 이전의 기억과 사라져가는 것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이었을 거라 짐작해 본다. 그로도 부족한지 <흙, 땅, 집 그리고 기억의 빈 터>(2023), <양구 겨울 밤>(2021), <양구 가는 길>(2022)에서 솔방울이나 벌집, 모래 같은 자연물을 그의 화면에 가두어 두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전시장은 1층과 지하로 구분되어 있다. 1층은 캔버스를 벽에 거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전시하였고, 지하는 수십 점의 드로잉을 벽에 붙이고, 캔버스를 벽에 기대거나 걸어 놓았다. 일기처럼 그려진 수많은 드로잉 속에 전시명과 동명의 작품 <나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2013)가 보인다. 지붕을 이고 걷는 사람과, 그를 따라가는 동물의 모습을 그렸다. 그림의 인물은 집의 나머지 부분을 만들려는 노력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지붕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간다. 전시의 제목으로 미뤄보아, 걷는 이는 목적지 없이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객은 그 모습이 작가의 모습이리라 어렵지 않게 예상해 볼 수 있다.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해 주위를 둘러싼 생명에까지 닿은 그의 따뜻한 시선은 유지한 채, 작가는 전시를 통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고민의 무게와 관심사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비록 조금은 어수룩하고 순진해 보일 만큼 전략적이지 못한 작업 방식을 고수하지만, 달리 보면 꾸밈없이 작가를 온전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주목할 만하다. 전시에서 ‘나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 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다. 작가가 자신에게 묻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그는 여전히 찾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머물렀던 터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돌아볼 것이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물감처럼 쌓인 그의 터를 돌아보려 상처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균열을 받아들이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 누구와, 어디에서 살아갈지.

_이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