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원
최장원
〈똥을 싸고 뭉개기〉
내 동생에게 너무나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8월에 하는 개인전에 오라고 말했다. 전시 제목은 《HIV감염 7주년 기념 RSVP》다. 나는 내 동생이 내가 HIV에 감염된 것을 모르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동생은 내가 HIV를 주제로 한 작업으로 참여한 전시에 와서도 그것에 관해 얘기하지 않아서, 그냥 그 애가 아주 둔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애가 전시에 비치된 글을 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통화로 '전시에 와~ 근데 전시 제목을 보면 네가 까무러칠지도 모르는데~'라고 말했다. '뭔데 그래?' 나는 '나 7년 전에 심하게 아팠던 거 기억나? 그거 급성 HIV 증후군이었어.'라고 말했다. 그 애는 '어... 나 알고 있는데?'라고 대답했다.
내가 HIV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어머니였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얘기하면서 '네 동생에게도 말했더니 너무 놀라 충격을 받아서 감당을 못하길래 오진이라고 둘러댔다'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나는 7년 동안 동생이 내가 HIV에 감염된 줄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통화에서 동생은 자신이 부모님보다 먼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HIV가 몸에 처음 침투하면 '급성 HIV 증후군'이 생긴다. 사람마다 증상이 다른데, 보통 발열, 두통, 뇌수막염, 구토 등으로 온다. 나는 매우 심한 뇌수막염 증상이라고 생각해서 대전 건양대에 입원했다. 그때 내 동생이 대전에 있어서 나를 보러 병원에 왔었다. 그때 내가 상태가 매우 안 좋아 져서 혼자 복도를 헤매면서 집에 간다고 헛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걸 보고 심각하게 여긴 동생이 부모님에게 연락했다. 이후 가족들은 나를 더 큰 병원인 충남대로 옮겼다.
수화기 너머로 동생은 건양대에서 의료진들이 내가 혈액 내 어떤 항원이 지나치게 높다고 말하는 걸 듣고 알게 되었다고 했다. 동생은 의료 관련 공부를 해서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었던 것 같다. 동생은 그 이후로 건양대 측에서 나를 조금 격리하려고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또 그 애는 이후 옮긴 충남대에서도 내가 HIV감염인이어서 응급실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주사 놓는 것을 늑장 부린다든가 하는...
나는 7년 동안 잃어버린 동생을 찾은 것 같다고 동생한테 말했다. 동생은 '어... 서운한데...?'라고 했다. 나는 'HIV를 주제로 한 내 작업물들을 봐도 별말을 안 하길래. 네가 미술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넌 SNS도 전혀 안 하니까 내가 인터넷에서 하는 얘기들을 못 봐서 모르는 줄 알았지...!'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몇 마디를 더 나눈 뒤에 그 애에게 내 전시회 일정을 알려주고 통화를 마쳤다.
왠지 기분이 좋기도 하고 마음이 이상해서 어머니에게 통화를 걸어 동생과 통화한 것을 얘기했는데 '어 걔 알아...;;;'라고 했다. 내가 동생한테 '7년 동안 잃어버린 동생을 찾은 것 같다'라고도 말했다고 하니, 어머니는 '똥을 싸고 뭉개고 있네...;;;'라고 했다. 나는 똥을 싸고 뭉개서 좋았다.
최장원
〈움직여야 불이 켜지는 조명등처럼〉
출판사 편집자님과 첫 번째 미팅을 했다. 나는 그 자리에 무지개 마스크를 썼다. 편집자님은 ‘마스크 제작하신 거예요?’ 하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냥 구입한 거라고 답했다.
미팅을 끝내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남자친구의 차에 탔다. 나는 조수석에 앉았고 안전벨트를 멨다. 남자친구는 “오늘 무지개 마스크 썼네?”라고 했다. 그는 “멀리서도 게이인 거 알겠다~”라고 말했다. 그가 신경 쓰는 것 같아서 나는 다음에는 까만색 마스크를 쓰겠다고 했다.
나는 그와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그의 집으로 갔다. 주차장에서 우리 둘은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우리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의 집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집이 있는 층에 있는 이웃집은 현관문 바깥에 십자가를 붙여 놓았다.
그와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가려 하는데, 그가 뜯지 않은 하얀색 마스크 한 뭉치를 주려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그는 이게 귀가 안 아프고 편하다고 했다. 나는 작업실에 이미 빨아서 여러 번 쓸 수 있는 까만색 마스크가 있다고 괜찮다고 했다. 그는 한 번 더 권했다. 나는 그러면 한 개만 달라고 해서 지금 쓰고 가겠다고 했다.
그의 집 밖으로 나가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복도의 감지등이 잠깐 켜졌다가 꺼졌다. 다시 그 조명등이 켜지게 하려면 나는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나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있었다. 그는 뭔가를 챙기느라고 나보다 조금 늦게 복도로 나와서 내 옆에 나란히 섰다.
나는 알았다.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나는 모든 사람이 나처럼 게이인 것을, HIV감염인인 것을 드러내고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도 내가 조금 가라앉은 기분인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는 “나는 오픈되어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잃을 것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면 항상 조금 더 오래 씹어보게 된다.
차 안에서 그에게 내가 곤약을 먹었던 일을 얘기했다. ‘내가 체중을 감량해 보고 싶어서 곤약을 먹었던 적이 있었어. 곤약은 저칼로리라서 좀 많이 먹어도 되는 줄 알고 많이 먹었는데, 곤약은 원래 소화가 잘 안 되는 데다가. 그게 뱃속에서 계속 뿌는거야. 그래서 삼일동안 내내 계속 토하고 체한 상태여서 너무 힘들었어. 내가 소처럼 되새김질할 줄 안다면 훨씬 나았을텐데.’ 나는 조수석에서 왼손을, 그는 운전석에서 오른쪽을 내밀어 서로의 손을 잡았다. “나와 함께 가장 게이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다니!” 그가 되물었다. “게이 같은 행동?” “아니, 서로의 음경을 핥잖아!” 그가 웃었다. 우리는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서울역 즈음에 다다랐다. 나는 느끼한 말투로 말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그가 대답했다. “해방촌으로. 그런데 왜 해방촌이지? 난 잘 몰라.” “어딘가를 떠나온 사람들이 모여 살 게 되었으니깐.”
그가 운전하는 차는 나의 작업실에 거의 다다랐다. 나의 작업실로 향하는 길은 좁고, 꼬불꼬불해서 차가 들어가기 어렵다. 그는 오거리에 나를 내려준다고 했다. 나는 데려다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가 클로짓게이인 것을 서운해할 수 없다. 나는 그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서 이야기했다. “이것 참! 무지개 혁명만이 답이다! 내가 청와대 꼭대기에 프라이드 깃발을 꽂을 것이야! 내가 어? 한탕 크게 해서 형한테 한 자리 줄게! 문체부장관 어때?” 그가 웃었다. 차는 오르막길을 다 올랐다. 오거리에 도착했다. 우리는 잠시 유리창이 썬팅 된 차를 세우고 마스크를 내려 뽀뽀를 하고 다음에 또 보자고 작별 인사를 했다.
최장원
하룻동안 식재료에 사용할 수 있는 20만원이 생겼습니다. 20만원을 사용하여 오늘의 식탁을 어떻게 꾸릴까요? 누구를 초대할까요?
요즘 로맨스관계에 있는 그 사람을 불러서 비싸고 맛있는 식사를 함꼐하고 싶다.
평소에 먹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주문해서 먹거나, 함께 요리해서 먹어보고 싶다.
질 좋고 신선한 야채구이, 좋은 향이 나는 버섯요리, 좋은 술 같은 것들...
최장원
모든 예술이 익명으로 공개된다면 당신은 예술 활동을 이어갈 것 같나요?
지금 나는 HIV감염인 당사자의 얘기를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내 이름과 내 관계들을 다 공개적으로 얘기하며, 이 작업을 하고있고, 그래서 이 것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모든 예술이 익명으로 공개'해야한다'면 예술 활동을 하기야 하겠지만, 나는 다른 방식의 예술을 생각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