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희

김송희

09/07/21
- 스스로 파고든 어둠이 너무 깊을 때, 우주를 홀로 떠도는 작은 통조림을 떠올리곤 했었다. 오랫동안 해온 일을 그만두고, 오랜만에 동종의 어둠에 싸여있었다....
어둠, 식탁, 씨앗, 먹는, 생명, 지금, 곁, 호두, 공존, 순환
  • 스스로 파고든 어둠이 너무 깊을 때, 우주를 홀로 떠도는 작은 통조림을 떠올리곤 했었다.
    오랫동안 해온 일을 그만두고, 오랜만에 동종의 어둠에 싸여있었다.
    어제 바닥에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조금 더 깊어지는.
    말그대로 누워서 울던 그 시간동안에도 나는 이 시간이 언젠가 지나갈 거라는 걸 알았다.
    기특하게도 이제는, 이 어둠이 지금 내게 필요한 시간이라는 걸 안다.
    올라가려면 한동안 머물러야 한다는 것도.
    때가 되면 스스로 힘껏 손을 뻗을 거라는 것도.

  • 어둠에 묻혀 사라질 것 같을 때는 더듬더듬 호두를 쓰다듬는다. 곁을 지켜주는 것들과 닿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거기에 있다.

  • 잘 다듬어서 내어놓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일어나야지.
    아무렇게나 먹고 아무렇게나 누워서 종일 이 생각만 했었다.
    또 이렇게 지나가고 잊어버릴까봐 겨우 겨우- 스케치를 해두었다.
    아마도, 바닥에 닿은 것 같다.

  • 하루에 쓸 20만원의 식재료비가 생긴다면 신선한 채소와 과일들을 가지고 간단하고 풍성하게 식탁을 차리겠다.
    그리고 내게 용기와 영감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서로에게 힘을 받는 것처럼, 우리는 싱싱한 먹거리들이 품은 힘에 기대어 산다.

  • 결국에는 깊은 어둠 속에서 홀로 싹을 틔워내는 씨앗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 알의 작은 씨앗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

  • 그 많은 생명들에 기대거나 빼앗는 ‘먹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래서, 살아있으니까.
    내가 죽은 다음에는 땅과 미생물과 벌레와 식물과 동물들이 먹을게 남아있는채로 묻히고 싶다. 가는 길에라도 지구에, 땅에 뭐라도 보탬이 되는 쪽으로. 산이든 들이든 밭이든 마당이든 어디든. 나를 먹여준 것들에 나도 먹이가 되도록.

  • 마야 사람들에게는 ‘카스리말 kas-limaal’이라는 개념이 있었다고 한다. 그 뜻은 ‘서로 빚지는 것, 서로 생명을 주는 것’. 동물과 식물, 인간, 바람, 계절 등은 모두 서로의 열매에 빚을 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내가 커다란 자연의 ‘일부’, 생명 순환의 ‘순간’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막연하게 생각했던 죽음도 삶도 맑고 단순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 나는 다시 씨앗이 되었다. 중년이 되자마자.
    싹을 틔우고 제법 자라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른 추위가 다가오면 재빨리 씨앗을 맺어 다음 생을 기약하는 식물들처럼, 크게 흔들리고 나니 다시 작은 씨앗이 되어 후두둑 떨어져버렸다.
    그러니, 괜찮다.

  • 지금 내 곁에는 호두가 있다. 호두는 주로 잠을 잔다. 말을 걸면 조용히 나를 응시한다. 이 털복숭이 존재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아서 오늘은 여기까지.

  • 비가 오기 전에 수확해둔 레몬그라스와 애플민트, 페퍼민트, 레몬밤을 씻어 말려두었고, 차조기 잎은 씻어서 물기를 빼는 중이다.
    곁에 있는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내 텃밭에서 나는 것들로 식탁을 차려주고 싶다.
    내 마음과 힘을 고스란히 담아.

  • 지금 오후 4시, 보슬비가 끊어질 듯 말듯 내리고 있다. 당장 문 밖을 나선다면 동네 천변을 걸어도 좋겠다. 혼자 계속 걸어도 좋고,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도 좋고.

  • 개인과 공동체는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들의 연결이 공동체라는 사실을 서로 인정하면. 아주 느슨하고 덤덤한 그러나 끊어지지 않고 온기를 나누는 공동체로. 서로의 이상함이 양해가 되는 개인들끼리 만드는 이상한 작은 공동체들이 아주 많아지는 것. 우리는 결국 커다란 순환 안에서 서로의 일부니까.

  • “어째서 사람이 타인이나 다른 존재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우리들이나 자연의 모든 것이 근원에 있어서 모두 하나의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 것밖에 달리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_ 김종철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김송희

09/04/21
( 오늘은 날씨가 너무나 청명해서 종일 청소와 정리....jpg )
일상, 가을, 아름다움, 좋은미술, 어느쪽

김송희

09/03/21
어젯밤에는 꿈도 없이 달게 잤어요. 자기 좋은 계절이에요. 잊을 수 없는 꿈이 몇가지 있는데, 어떤 마음이 갈무리 되면서 꿈을 꾸기도 해요. 그런 꿈을 꾸고 기록해두었...
꿈, 박태이, 박순덕, 아는여자

어젯밤에는 꿈도 없이 달게 잤어요. 자기 좋은 계절이에요.
잊을 수 없는 꿈이 몇가지 있는데, 어떤 마음이 갈무리 되면서 꿈을 꾸기도 해요.
그런 꿈을 꾸고 기록해두었던 걸 찾다가, 태이언니-순덕형님에 대한 꿈을 꾸었던 날의 일기를 찾았어요.

얼마 전 배미정작가-미정언니의 '아는 여자' 전시를 보고 책을 사서 읽으며 언니가 순덕형님과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순덕형님은 미술이 너무 하고 싶어서 중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다시 입시를 해서 미대에 왔다고 들었어요. 입학한 해에 형님이 30살이었을 거에요. 그런 열망과 용기가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나요.

늦은 입학으로 동기였던 순덕형님과 나 그리고 복학한 선배였던 미정언니는 함께 학교를 다녔었어요. 졸업 후 대부분과 연락을 안하고 지냈기에 미정언니와도 서로 연락할 일은 없었으나 우연히 언니 작업을 보곤 했었어요. 근래 지인의 지인으로 SNS에서만 보다가 언니 전시 <아는 여자>를 찾아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한장의 그림과 그를 설명하는 문장 때문이었어요.

“반짝이고 있었던,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싶었다. 마음 깊은 곳에 박제된 빛을 가끔씩 꺼내 어두운 모퉁이에 다다를 때마다 그곳을 밝혀 본다.”

관련한 글을 모아서 만든 동명의 책도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찾아간 서점 겸 전시장에서 언니를 또 우연히, 드디어 만났어요. 예전과 어쩜 그리 똑같은지, 그간의 공백을 확 없애는 다정한 부산 말투와 개구장이처럼 활짝 웃는 얼굴이 반가웠어요. 그리고 각자의 일행을 신경쓰며 다급히 안부를 묻는 그 짧은 시간동안 왠지 불쑥 나와버린 순덕형님 이야기.
나는 아마도 형님을 기억하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걸까요. 미정언니는 형님과 가까웠다고, 책에도 그 이야기를 썼다고 했어요. 순간 먹먹함을 웃음으로 넘기며, 우리는 다시 만나자 약속하고 헤어졌어요.

집에 돌아와 첫 장을 읽으며 기분이 묘했어요. 내가 모르는 순덕형님의 마지막 날들이 적혀있었어요. 이제 이곳에 없는 사람이 돌고돌아 이렇게 우리를 다시 연결해주고 있어요.
미정언니의 말대로 순덕형님-태이언니는 우리 '마음 속 박제된 빛'이 되었어요.

꿈을 꾸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잔뜩 먹고 밤 늦게 돌아왔는데 그 때문인가...

내내 화창한 날이었다. 어떤 공간에 대학 동기들이 모여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작년에 이쪽 세상을 떠난 동기 태이언니도 있었는데 학교다닐 때 언니랑 셋이서 같이 잘 어울렸던 혜진이랑도 인사를 나눈 다음 언니와 둘이 거리로 나왔다. 걸어가다 왠일인지 지금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있길래 반갑게 인사하고 계속 걸었다.

태이언니, 아니... 언니의 옛 이름에 왠지 오빠 언니라는 호칭이 쑥스러워 형님이라고 붙여 불렀던, 더 익숙한 이름 - 순덕형님이랑, 아마도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화산동 집으로 넘어오던 길에 있던 옛 동네로 여겨지는 거리를 걸었다. 원래 낮은 집들만 있던 주택가인데 꿈 속에서는 연남동이나 망원동처럼 작은 까페나 가게가 많이 생겨나 있었다.
순덕형님과 같이 뭘 좀 먹자 했다. 나는 예쁜 브런치 까페 같은 곳을 가려했는데 순덕형님이 아주 아주 오래된 시장통 분식집 같은 곳으로 나를 끌었다. 천장까지 오랜 시간의 때가 켜켜이 앉은 그 곳은 처음 갔는데도 익숙하고 친근하고 그리운 느낌이었다. 해가 밝은, 아주 화창한 날 우리는 적당히 아늑할 정도로 어두운 그 분식집에 들어가서 메뉴를 보았다. 떡볶이와 김밥 등 생각보다 메뉴가 많았는데, 뭘 먹을까 하며 순덕형님이랑 희희덕거리며 메뉴판을 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아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꿈을 종종 꾸는데, 보통 꿈을 꾸면 꿈에 그이가 나왔더라고, 핑계김에 연락을 하곤 했었다. 전화기를 들었는데, 연락할 곳이 이제 없다. 가만 생각해보니 꿈 속이지만 순덕형님이 이제 세상에 없다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형님과 만나 얘기하고 걷고 한게 더 기분이 좋았던 것도 같다. 꿈 속 풍경을 다시 생각해보니 햇볕이 환하고 여우비가 내렸던 것 같기도 한데, 날씨 좋은 날 치앙마이의 거리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역시나 기분이 좋다. 그래서 꿈에 잠깐 만났던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기분좋은 꿈을 꾸었는데 너도 나왔다고.

작년 이맘때였나 형님이 돌아갔다고, 발인이 고향인 제주라고, 실은 아픈지 오래였었다고, 1차로 치료하고 괜찮았다가 재발해서 고향에서 투병하다가 갔다고, 학교 마치고 대학원을 다니며 학교에서 일했는데 작업과 병행하면서 몸을 돌보지 못한거 같다고, 주변에서 몸 챙기라고 잔소리를 해도 혼자 살고 작업하다보니 그러지 못했다고... 모든 소식을 압축한 파일의 제목들처럼, 한꺼번에 뭉텅뭉텅 들었다.
동기들이랑 거의 연락을 안하고 지내니 전혀 몰랐다. 가끔 형님이 먼저 연락해서, 본인이 날 잘 챙겨야하는데 미안하다고, 언제 한번 보자고 하면, 늘 응응 그래요 그래요 만 했었다. 연락이 뜸해지고 한번은 갑자기 호두파이였나 쿠폰을 보냈길래, 이게 뭐에요? 하면서 고맙기도 하고 놀라기도 해서 먼저 연락해 조만간 꼭 보자 했는데, 늘 말 뿐이었다. 그러다가 형님이 떠났고 제주에서 발인을 한다고 전전날인가 소식을 들었지만 일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어쩌고 저쩌고 스스로 적당한 핑계를 둘러대며 가지 못했다. 그렇게 놀랐고 슬펐고 그 다음은 묻었던가 잊었던가....

일요일. 종일 집에서 호두와 둘이 시간을 보내며 천천히 밥을 지어 먹고 천천히 청소를 하며 밖에서 들어오는 햇볕과 집 안에 고여있던 공기가 만나 시간이 흐르는대로 색이 변해가는 것을 보았다. 해가 길어져 집안에 지는 볕이 가득할 때, 해야하는 일들을 잠시나마 다 잊고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만났다. 순간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사소한 장면들이 새삼 ‘기억’으로 만들어질 때, 사는게 참 별거 아닌데 싶다가도 살아있으니 이런걸 느낀다 싶었는데... 어쩌면 나는 오늘 내내 마음 뒷 편에 간밤에 꾼 꿈 생각을, 연락할 곳 없는 순덕 형님 생각을 접어두었나 보다.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폰에 저장해놓은 지난 메모들을 보며 작년 이맘때 쓴 글들을 보았다.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다고. 유난히 그 해 여름 아는 이들의 죽음이 많아 맘이 이상하다고 주변에 기대던 시절이었다. 그때 약해진 마음으로 쓴 글들 옆에, 어젯밤 이후 내내 접어두었던 순덕형님 꿈을 펼쳐서 나란히 놓아본다.
순덕형님이 가는 길을 못 봐서 마음에 남았던가. 그때, 발인일이 지난 후 오랜만에 혜진이와 만나 형님 얘기도 하고 근황 얘기도 하면서 이렇게 가끔 보자 했는데 그것도 꼬박 1년이 지났다. 시간은 빠르고 우리는 점점 더 죽음이 가까워지고 덕분에 삶을 더 깊게 느끼게도 되는 가보다. 오늘처럼. 형님이 이 세상에 있을 때에도 연락을 통 못하고 못 보고 살았어서 문득 문득 부재가 더 낯설다. 전화 저편에 있을줄 알았는데 없다는 것을, 애틋하게 잡고 있지도 않았으나 잘받아들이지도 무심해지지도 못했던 거다. 기분 좋은 꿈으로, 이제야 내가 순덕형님을 보냈나보다.

순덕형님. 거기서 잘지내고, 작업도 재밌게 하고 있나요? 다음에 만나면 우리 같이 맛난거 많이 먹어요. 또 와요.

2018.7.16. 02시

김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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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희

08/22/21
후삐요이 후삐요이 *우찌지지지지지지지지* 훠비비비비...
일상, 산책, 소리, 여름

후삐요이 후삐요이

우찌지지지지지지지지

훠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

끼요이 삐요이 후요이 삐요이

위임뮈임뮈임뮈임뮈임뮈임뮈임뮈임

치치치치치치치치치치치치치치

츠츠츠츠츠츠츠 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

미욤미욤미욤미욤미욤미

이요오이 요오이 요오이

후티티티티티티티티티티 우띠티티티티티이이

키리리리리리리 키리리리리리리

훠띠요이 후띠요이 후띠요이

호뜨로이리리리리이이이이이이

뿌르리이 퓨르리이 뿌르리이 프르리이

트리리리리리리릴리리리리리이이이

김송희

08/18/21
얼마 전부터 백수가 되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가라앉아 한동안 잠을 많이 자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동거인의 생활패턴에 맞추어 6시쯤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6:30쯤 동거인이 ...
자기만의방, 쓸데없는, 창문밖, 5년뒤

얼마 전부터 백수가 되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가라앉아 한동안 잠을 많이 자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동거인의 생활패턴에 맞추어 6시쯤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6:30쯤 동거인이 출근하고 나면 온전히 내 시간이 되요. 오랫동안 바란 시간인데 잘 못 쓰고 있어요.

집이 작아 오랫동안 고민만 하다가, 며칠 전 마음 먹고 내 방을 만들었어요. 부엌살림이 한편에 자리잡고 있지만, 처음 가지는 내 작업실이에요.
정면에 우리 텃밭과 산과 하늘이 보여요. 산동네 꼭대기에 살기 때문에 가능한 풍경이에요. 그쪽에서 불어들어오는 바람이 참 좋아요. 온갖 산벌레와 산새들의 소리도요.
창 밖으로는 언제나 자연이 보이면 좋겠어요.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만날 수 있도록.

오롯이 나만의 방은 아니지만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뭔가 해보겠다는 고마운 마음이 생겨요. 용기 같은 걸까요.

오랫동안 내가 만들어내는 글과 그림에 ‘쓸데없는’ 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써서 보여줄 공간이 없었다는 의미여서도 그랬고, 말그대로 무용無用해서도 그랬고요. 쓸데없는 짓거리에 마음이 동하는 편이라서 그 이름이 좋았습니다. 보잘것 없어도 저에게는 필요한 작업이었어요.
작년에 빈 시간이 조금씩 생기면서 아주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때의 마음도 일기처럼 그려두었어요.

5년 뒤 오늘 나는, 이른 아침인 이 시간에 나만의 작업실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작업을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곧 생업을 위한 출근을 해야하더라도 집중해서 마음껏 내 작업을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처럼 건강한 호두가 책상 아래 엎드려 자고 있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이곳이 아닐 수도 있겠죠. 어디든, 초록이 보이는 곳일 거에요.

김송희

08/01/21
( 봄인가요? 응. 그러니 마음껏....jpg )
인생의숙제, 봄

김송희

07/31/21
( 나한테 왜그랬어 - 딱히 대답은 필요....jpg )
탓, 질문, 외면, 의문

김송희

07/16/21
(곁.jpg) ...
매일, 개, 호두, 애정, 샘, 곁

점점 더 자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되겠지.
많이 많이 봐둬야지.
보드랍고 말랑한 귀와 따뜻하고 촉촉한 코와 둥그런 등과 엉덩이
그리고 작은 숨소리와 가만히 손을 대면 기대어오는 무게감과 온기, 모든 것을.

움직임이 적은 무언가를 질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이것도 사랑이 아닐까.
애정하는 시선으로 오래오래 바라볼 수록 끝없이 애정이 길어올려진다.
그러고보면 어떠한 마음이 ‘샘 솟는다’는 말은 누가 처음 했을까.
참 적절하고 예쁜 표현이다.

김송희

07/14/21
잊지도 않았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_2014년 4월 16일 이후 매년 4월에 쓰는 ...
꿈, 외면, 아무것도, 4월, 가만히, 미안해, 일상, 아이들

잊지도 않았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_2014년 4월 16일 이후 매년 4월에 쓰는 일기, 혹은 편지.

2015.4.11

벌써 몇해 전 일인지 모르겠다.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지금의 내가 열여덟 혹은 열아홉의 나를 만나러 갔다. 어린 나는 교복을 입고 교실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어찌나 슬프게 우는지 꿈을 꾸는 지금의 내 목이 아팠다. 나는 어린 나를 토닥이며 다 괜찮아질 거라고 나는 앞으로 지금과 다른 세상에서 나의 삶을 살게 될거라고 얘기해줬다. 꿈을 깨고서 정말 그렇게 됐구나 싶어 조금 울었던 것 같다.

그랬다. 그때의 나는 괴로웠지만 그래서 더 꿈이 많았다. 친구들도 막연하지만 하고싶은게 많았다.
우리는 '스무살이 되면...'이라고 시작하는 말들이 점점 더 많아졌었고 자주 웃고 자주 울었다.

열여덟 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 수백명이 가라앉는 배 속에 '가만히 있었다.'

아이들은 스무살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미안해, 가만있지 않을게 했는데, 가만가만 벌써 1년이 지났다.
아프고 비틀거리더라도 봄은 꼬박꼬박 돌아오고 잊지 않고 꽃을 피우는구나.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 후 일본 '백만인의 어머니' 중 한 어머니는 '왜 이런 세상에 너를 낳았을까' 자책했다.
열여덟, 많던 적던 그보다 여러번 봄꽃을 보며 설렜던 우리는 2014년 4월, 수백명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우리는 왜 이런 세상을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