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ddy kgwon 권동현+권세정
권동현+권세정

epilogue

인간의 신체를 생각해보자. 콧날로부터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간격이 얼추 비슷해야 한다. 척추로부터 멀리 뻗어 나온 두 손이 서로를 맞잡을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대칭에 대한 강박으로 이루어진 신체 형태에 부합해야 “정상”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대칭이 잘 맞는 신체가 그렇지 않은 신체보다 균형을 잡기 수월하기에 빠른 이동이 가능하고 생존 확률이 높으며, 따라서 번식률도 높다고들 한다. 그러나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비대칭으로 개조한 종도 있다. 예컨대 넙치는 인간과 동일하게 좌우 대칭으로 태어나지만 자라면서 바닥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안구의 위치를 반대편으로 옮긴다. 올빼미의 왼쪽 귀와 오른쪽 귀는 각각의 역할에 맞게끔 모양과 크기가 다르게 생겼고 비대칭적으로 위치한다. 한편 나무줄기가 뻗어 나아가는 모양, 생명체는 아니지만 산맥이 이루는 파도와 같은 패턴은 개체 내부의 규칙보다 그것이 놓인 공간의 흐름과 막힘, 힘들의 충돌에 몸을 맡긴 채 부유하고 융기하고 운동하는 듯 보인다.

소문자 ‘d’는 메마른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검지 손가락으로 그 능선을 따라 스ㅡ윽 훑으면 개구리 목탁처럼 잘 마른 나무의 울음소리가 날 것도 같다. 능선 위로 일곱 개의 작고 둥근 봉우리가 얕게 진동하듯 이어지고 그 산맥을 중심으로 4개 또는 6개의 횡축이 불완전한 좌우 대칭의 포물선을 그리며 산기슭으로 떨어진다. 4개의 횡축은 처음에는 꽤나 균일한 산비탈을 이뤘을지도 모른다. 아니, 원래는 13개의 균일한 횡축이 비옥하고 두툼한 지층에 덮여 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것들은 너무 비좁거나 애매하게 넓은 간격으로 분포해있다. 어떤 것은 얄팍해진 지층 위로 유독 도드라지고 어떤 것은 너무 미묘해 카운팅조차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은 6억 년 전부터 지구 생명체 조상의 몸속에 기거하며 대칭 구조의 신체를 디자인해 온 혹스(HOX)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내기 위해 말미잘의 몸체를 패턴화하는 유전체에서 혹스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제거했다. 그 결과 돌연변이가 된 말미잘은 원래 생겨야 하는 촉수보다 적은 촉수만 발생했고, 일부 촉수들은 더 커지거나 부분적으로 융합되었으며, 다른 촉수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그렇다면 소문자 ‘d’의 능선은 왜 점차 균질하지 않고 서로 가까워지다 못해 뭉쳐지는 등 비대칭에 가까워질까? 혹스 유전자가 기능을 상실한 것일까? 넙치처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변신을 하는 중일까? 그도 아니라면 주변의 힘의 작용에 그저 자신을 내맡긴 것일까?

저기 마루 한 켠에 소문자 ‘d’의 산비탈이 보인다. 가느다란 기둥에 이파리만 잔뜩 매달린 화초들을 배경으로. 인도네시아산 자단나무와 싸구려 인조 가죽으로 이루어진 짙은 갈색의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가구 사이에. 본래 그것은 침대 끝자락, 부엌 냉장고 하단의 모터 잔열이 흘러넘치는 곳, 현관 앞에 깔아둔 발 매트 등 발 길이 스치는 곳곳에서 꽤나 역동적인 모습으로 뭉쳐져 있곤 했다. 작아지고 있는 ‘d’의 영역은 할아버지가 잠시 이곳에 머물렀을 때와 마찬가지로 내부의 공기를 죽음에 가까운 감각으로 메운다. 죽음을 앞둔 존재는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음이 명백해진 언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는 관계를 연신 떠오르게 한다. 연인이 눈을 붉게 뜬 채 말한다. 너가 평생 후회했으면 좋겠어.

동현에게 이동 기능이 탑재된 초광각 마크로 렌즈의 링크를 보낸다. 이 렌즈 써보고 싶어. 사람 눈의 초점 거리인 3.5mm보다 더 가까운 초점 거리가 가능해. 버드가 아닌 버그 아이 뷰라니. 딩동. 금세 답장이 왔다. 광각 렌즈로 촬영한 검은 연기를 토해내고 있는 거대한 건물의 사진. 소문자 ‘d’는 지금 이 시간 즈음 그러니까 매일 새벽 3시경 저곳으로 되돌아온다. ‘d’는 오른쪽 뒷다리로 중심을 잡고 남은 세 개의 다리가 초침, 분침, 시침이라도 되는 듯 시계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린다. 분침이 12시 위치에 도착했을 때 오른쪽 뒷다리를 떼어 한 걸음 옮겨간다. 소멸해가는 태풍처럼 느릿느릿 빙글빙글 돌면서 전진한다. 마침내 뒷다리를 살짝 낮추며 내장에 가득했던 액체와 가스를 내보낸다. 때로는 마치 다리가 머리보다 앞서 나아가려는 듯이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큰 보폭으로 휘적휘적 나아간다. 꼽등이처럼 장애물을 향해 과감하게 도약한다. 침 넘김이 어렵더니 가끔씩 살랑이던 오른쪽 고막이 오늘따라 유독 팽팽하게 느껴진다. 지평선이 흔들린다. 다리가 머리를 추월한다. 세상이 뒤집힌다.

prologue

하늘이 검은 연기로 가득했던 그 날 이후로 기온이 또다시 급격히 낮아지고 있었다. 곧 나무와 풀이 말라가고 사냥감이 줄어들 테다. 나는 이 심상찮은 상황을 피해 수년 전 왔던 길을 되돌아갈 요량이었다. 조금은 더 따뜻하고 수풀이 우거진 곳을 쫓아 남쪽으로 가던 도중 저 멀리 이전에는 분명 없었던 건초에 뒤덮인 육중한 산맥이 보였다. 비린내가 매캐하다. 피비린내의 진원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산맥이 아닌 한날한시에 죽은 듯 보이는 7마리의 매머드 사체였다. 도대체 누가 7마리의 매머드를 동시에 사냥할 수 있었을까? 저들끼리 전쟁이라도 벌인 걸까? 새로운 포식자가 나타난 것일까? 나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인근을 살핀다. 검치호랑이가 한참 전에 다녀간 흔적이 있긴 하지만 아직 고기는 충분해 보인다. 나는 그제야 허겁지겁 허기를 채운다. 언제 다시 검치호랑이가 되돌아올지 모른다. 곧이어 수풀 사이로 고요히 ‘D’의 무리가 나타난다. 함께 먹고도 남을 양이기에, 그리고 ‘D’의 청각과 후각을 활용하면 그들보다 배는 큰 포식자가 접근하는 것을 빠르게 감지할 수 있기에 굳이 쫓아 내지 않기로 한다. 그들도 비슷한 계산을 한 것 같다. 우리는 검은 대기를 배경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롭고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남쪽으로 내려가기를 그만두고 이곳에 머무르기로 한다. 남쪽이 아무리 따뜻하다고 한들 이만한 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먹고 남은 매머드의 거대한 뼈가 한데 모인 모습이 흉흉한 게 부락을 형성하기에 아주 적절해 보인다. 인근을 맴도는 ‘D’의 존재도 평소와 달리 든든하다. 매머드의 굵은 뼈로 골조를 잡고 겉면을 질긴 가죽으로 덮는다. 멀리서 보면 살아있는 매머드인 줄 알 것이다. ‘D’의 무리 역시 주변을 맴돌다 근처에 자리를 잡은 듯하다. 무리당 개체 수, 체급, 구동력 등 모든 면에서 엇비슷한 ‘D’와 나는 언어가 다르기에 일시적인 휴전인지 동맹인지 확실히 짚을 순 없었지만 긴장감을 유지한 채 이 영역을 공유하기로 한다.

사실 소문자 ‘d’는 동맹 과정에서 ‘배제/제거’되었을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듯 보인다. 추측건대 이 무언의 동맹에는 ‘친절한 합의’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 달리 ‘불친절한 합의’는 언제 어디서든 쌍방에 의해 불시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불친절한 합의’의 과정은 오랜 기간에 걸쳐 ‘D’와 나의 신체 및 성향을 변화시켜왔다. 나는 내 종족의 언어뿐만 아니라 몸 말을 더욱 적극적으로 써먹어야 했는데, 그에 따라 피부색과 유사하던 나의 밝은 갈색의 공막은 점차 검은색의 홍채와 대비되는 흰색이 되었다. ‘D’의 무리 중 성질이 불같은 몇몇은 자신들이 순록의 고기만을 먹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는지 함께 사냥한 매머드 고기를 독점하려고 한다거나 내 종족의 어린 개체를 건드려 거처를 여러 번 옮겨 다녀야 했다. 그리고 일곱 번의 이주 끝에 마침내 지금 저곳에 누워있다.

앞서 말한 대로 ‘d’는 좀처럼 살갑지 않아 지난 10여 년 동안 엄마를 제외한 이들이 근처에 오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을 갔다가 나올 때마다 복도 끝에 숨어있다가 기습 공격을 하는 ‘d’를 피해 도망을 다녀야 했다. 할아버지가 이곳에 머무를 적에는 창가의 1인용 소파를 두고 할아버지와 ‘d’가 매번 기 싸움을 벌여 보는 이들을 무안하게 했다. 어느 날 아빠는 ‘d’의 버릇을 고치겠다며 골프채를 들었다. 엄청난 체급 차이에도 불구하고 ‘d’는 굴하지 않고 이빨을 드러냈고 다행히 골프채는 내려졌다. ‘d’는 인간에게만 맹렬한 것은 아니었다. 동종인 ‘d¹’에게 역시 가차 없었다. ‘d¹’는 나와의 동맹에 부합하게 교배된 종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며 성격 역시 예외적이지 않았다. ‘d’에게 ‘d¹’는 조금은 아둔한 붉은 피터에 가까운 느낌이었을까?

나는 이곳에 앉아 먼 기억을 더듬다가 문득 노파심이 든다. 건너편 강가의 수풀 사이로 검치호랑이와 같은 흑색 공막에 노랑 홍채의 눈을 번뜩이던 거대한 직립 보행 존재와 마주쳤을 때의 서늘함. 그가 낯선 곳에 막 도착해 열병에 시달리던 나를 보살피고 유전자를 교류했다는 기록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 그리고 언젠가 너무나 굶주린 나머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회색 늑대 무리의 저녁 식사 자리에 돌창과 횃불을 들고 불쑥 난입했을 때 우두머리 회색 늑대 06이 선뜻 자리를 내어줬던 그날 밤이 불현듯 떠올랐기에.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 이 순간이 환대를 받은 침입자가 기어이 이곳을 점령한 뒤 주인 행세를 하며 토착민과 토착종에게 되려 환대의 시늉을 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인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절대적인 환대를 요청했던 치명적인 침입종이었다면….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