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인
장자인

작년 겨울, 코로나19로 목욕탕에 가서 목욕하기가 어려워졌다. 개미마을에 있는 작업공간의 화장실은 공간 전체에서 꽤 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온천 분위기를 내보겠다고 빨간 대야에 물을 끓여 목욕을 하였다. 그 날은 눈이 많이 내렸고, 홍제동에 위치한 개미마을의 경사진 언덕길에는 바닥에 깔린 열선의 모양으로 눈이 녹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나는 친구와 마을 언덕의 꼭대기 자락에서부터 연기가 펄펄 흐르는 빨간 대야를 타고 썰매를 타고 상상의 밤을 내달렸다.

개미마을에 있으면서 어떨 때는 방 안에서 혼자만의 고즈넉한 시간을 갖길 바란다. 돌아오는 길에 건넨 안부 인사에 이웃 목사님이 빵 봉투를 주신다. 받고 어쩔 줄 모르겠으나 밤길을 걸어 들어올 때는 마을이 나를 품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잡초와 나무가 무성히 엉키어 자라난 숲 속의 길은 아득한 신비감을 준다. 그러나 엄마와 걸을 때는 열 맞춰 깔끔하게 닦여있는 길이 편하다. 하지만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엄마와 함께 바라보는 '이야기 거리'를 만들 수 있는 길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와 딸이 서로가 본인이 되는 걱정을 대화 안에 잠시 묻어두기 위해.

집에 있기 좋아하는 동생은 ‘코로나19’가 집에 있을 수 있게 하는 이유가 생겨서 나쁘지 않은 듯하다.

일상의 거리감은 어느 곁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이러한 일상에 균열이 일어날 때,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근에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는 형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도에는 떨어진 마스크가 많았고, 형은 본인이 자전거를 탈 때 그렇게 죽은 새를 많이 본다고 했다. 떨어진 마스크가 마치 죽은 새의 모습 같다고 했다. 근래 갑자기 무척 더웠던 날이 며칠 있었는데, 그럴 때 새가 숨을 곳이 없어 많이 죽는다고 한다. 요새 그렇게 풀들을 많이 깎는다고.

올 해는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하 소보사)이라는 공간으로 종종 일을 하러 간다. ’소보사‘ 는 농인들의 대안학교이자 공동체이다. 그 곳에서의 대화를 쫓아가다보면 훨씬 마음에 붙어있는 말을 주고 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손으로 하는 대화에서는 흩어지는 말이 적다. 어느 단어와 문장보다 더 빠르고 명확하게 전달된다. 대화의 시차에서 오는 피로감 따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