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아
홍은아 06/26/21 3:20 AM

평일에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그림 그리기에 대해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때로 고민하는 시간이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길다. 아침에 집을 나서서 밤 10시쯤에 퇴근한다.
주말은 추진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준비 및 진행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산책하고 집안일을 한다. 사실 주말의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다. 평일 밤에 일을 분배하려고 노력 중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매일 새롭고, 어렵다.

생각이 전환되는 시점에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렇지만 생각이 전환되는 일은 좀처럼 흔한 일이 아니다. 아주 미세한 생각의 변화들이 쌓여서 큰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시간이 긴 것 같다. 그렇지만 가끔 뛰거나, 산책할 때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보통은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한다.
최근 고민하는 시간이 줄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늘었다. 이 글을 최초로 쓴 후로 약 한 달여 간의 시간이 흘렀는데, 그간 작업의 진전이 좋았던 것 같다.

무한한 가능성에 마음을 여는 것이 오랫동안 힘들었다. 무한함이란 쉽게는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여러 각도로 볼 때, 항상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그리고 그 선택 아래 거대한 두려움이 도사린다.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에서 이 두려움을 넘어 선 것 같다. 더 진행해보면서 구체적인 방법들을 찾게 되겠지만, 현재의 해방감에 꽤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괴롭고, 즐겁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시작된 지 모르는 환상이 자꾸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풀도록 이끄는 것이 나에게 있어 그림 그리기이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할 줄 아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체도 모르는 것을 찾는 중이라 매번 어렵기만 하다. 그러다 해결책을 찾은 것 같아서 뛸 듯 기쁘다가도 경솔한 환희였음을 깨닫고 실망하기 일쑤이다. 그래도 조금씩 걸러지는 것들이 있어서 손을 놓기가 어렵다. 사실 이 어려운 과정이 괴롭고, 즐겁다.

자잘한 좌절과 타협의 순간이 끊임없이 온다. 작업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인간관계,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로부터 다양한 이유로 겪는다. 최근에는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가 여전히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직면한때 좌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이러한 좌절 앞에서의 타협은 결국 내 마음속 이상과 여러 가지 현실적 방안들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는 것일 것이다. 되도록 좌절 앞에서 희망적일 수 있는 타협을 하도록 노력한다.

내게 식자재를 위한 20만 원이 생긴다면, 신선한 도미와 가자미, 주꾸미, 새우를 잔뜩 사서 굽고, 다양한 버섯, 아스파라거스, 가지, 껍질 콩, 아티초크, 샐러드용 야채, 시트러스 과일 등을 사서 요리하고, 공을 들여 빵을 굽고, 맛있는 와인도 몇 병 따서 친구들과 즐거운 식사를 할 것 같다. (참고로 베를린의 식자재값은 서울보다 저렴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