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희
허선희 07/30/21 3:40 PM

열한살의 여름, 먹성이 좋은 나이였지만 그날은 밥을 미뤄두고 바다로 나갔다. 남동생과 나 사이에서 어머니의 평등하지 않은 태도에 마음이 자꾸만 상했고 동네 어른들의 농이 사실은 진짜가 아닐까라는 고민에 다다랐다.
야야, 니는 이집 아가 아닌가보다. 니만 얼굴이 다르네. 저기 다리 밑에서 주워왔나.
나는 다리 밑에 누가 버리고 간 애기였나,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닌가, 아버지는 왜 아무말 하지 않는가, 할머니는 내가 불쌍해서 잘해줬나 별별 생각을 다하며 훌쩍훌쩍 울었다. 11살 작은 머리로 생각을 이어가다 돈오점수! 순간 깨달아버렸다. 아, 나는 이집 셋째딸이구나. 가서 밥먹자. 나의 깨달음은 이러하다.
애를 주워오면 아들을 데려왔을 것이다. 장손의 집안에 굳이 딸을 업둥이로 데려올 이유는 없지, 빼박 엄마 아빠의 자식이구나.
그뒤로 나는 이집구석의 가부장과 싸우기 시작했다. 제사에서 선심쓰듯 절하라고 하면 내가 거절하고, 동생과 차별하면 악다구니 쓰고, 남동생보다 내가 잘 났음을 증명(안타깝게도 너무 어렸기에)하려고 애썼다. 세계의 시스템에 빨리 눈뜨게 된 것은 가부장의 모순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학교에서의 경쟁, 시험을 거쳐서 존재 증명을 해야 하는 사회, 수직과 경쟁 성공신화. 철학이 부재한 기술, 나아가 종차별의 생태 파괴까지.
나를 다른 삶과 다른 존재, 소수성과 더 작은 것들을 보려는 태도, 질문과 의문을 품으며 살아가게 만든 첫번째 갈림길에 등장한 이슈가 성차별이었다.
그 뒤로 명쾌하게 해결된 적 없는 고전적이면서도 현재에 펄펄 살아있는 페미니즘은 어떤 영역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생생한 주제이며 물러서지 않는 데드라인이다. 운동의 이슈도 아니고 문화예술의 탐색의 대상이나 주제, 소재도 아니다. 삶의 이슈 그자체이다.
문화예술 기획을 하면서 특별하게 젠더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작업한 적은 단한번도 없다. 아이디어의 발생과 진행하는 과정, 정리하는 모든 영역에 그냥 묻어나는 베이스 같은 것, 동양화의 바림 같은 것. 그러니 더 나이들고 할머니가 되어서 죽는 날까지 아마 다 풀지 못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예술과 인간의 삶, 문화로 드러나는 것들 많은 현재 진행형의 숙제와 이슈들이 있지만 가장 밑바닥에 있는,내 삶의 모순을 첫 인식하게 만든 성차별 이슈와 페미니스트로서의 각성이 있다. 몰랐으면 조금 더 편하게 살지 않았을까, 더 맘 편한 아이의 삶을 몇년이라도 더 지내지 않았을까. 11살에 아이의 평화는 끝났기에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