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가 필요하다.///// 180cm 책상 2개, 120cm 책상 1개 그리고 보조 테이블 위에 다 무언가가 올려져 있다. 과거에는 가족들과 내 공간에 찾아온 주변인들에게 얼핏 보면 어지러워 보이지만 이 혼돈 안에 더 큰 시간효율과 질서가 있다고 설득해왔는데, 요즘엔 빈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시작할 때 더 기분이 좋더라. 당연한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나는 사실 정리정돈이 서툰 편이고 새로운 것을 펼칠 공간이 더는 보이지 않을 때 한꺼번에 정리하곤 했는데 지금은 작업실을 나가기 15분 전쯤 Forest라는 앱을 켜놓고 청소를 하고 간다. 그래도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을 때의 장점도 있다. 눈에 파편적으로 들어온 조각난 것들이 머리만으론 하지 못했던 충돌을 만들어 주는 때도 있으니까. 작업할 때 어느 부분은 충동적으로 접합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사실 작업실 정리정돈에 관해서는 이래도 저래도 괜찮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나를 끝내기 전에 다른 것이 생각나면 그냥 시작해버려서 도중에 멈춰진 것들도 많고, 버리지 못한 재료들도 많다. 올 초 개인전을 준비할 때 친구와 대화하면서 진정성 있게 나의 습관과 성향을 극대화해서 보여주겠다 장담했다. 막상 설치 작업에서 혼란함을 보여준다더니, 내가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친구가 비웃었다. 언제는 막 할 거라더니 왜 정리하냐고. 조금 애매하다. 막상 혼돈으로 어지럽히려고 하면 내가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복잡한 생각들도 실타래를 풀거나 하나로 결론짓는 것이 참 힘든데, 그 고민이 성격에 따라 대해야 할 입장이 다르긴 하지만 예전에는 모든 것이 합당하고 명료한 것으로 귀결돼야 한다는 압박을 가졌다. 지금은 모든 것에 그렇지 않아도 됨을 알고 있다. 결론지어지지 않는 과정 그 자체를 잘 드러내 보려고 한다.///// 내 그림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자신이 정해놓은 정리와 질서에 특히 민감한 사람들이다. 모든 것을 행과 열을 맞춰 직각으로 놓아야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머리에서 빠진 머리카락을 다시 자신의 머리로 꽂아놓는 사람도 있다. 몇 초 뒤에 다시 사용할 물감의 뚜껑을 꼭 닫아야만 하고 본인이 납득한 시간의 루틴을 벗어나면 자제력을 잃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제자리라는 것이 확실한 사람들인데, 주변에서 요구하는 제자리에서는 종종 벗어나 있을 때가 있다. 이 학생들의 장애의 명칭에 스펙트럼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처럼 개인의 질서의 정도는 매우 다양하다. 정리정돈이라는 것이 참 사람마다 다르다.///// 창문이라든지 문이라든지 항상 규격화된 사이즈를 고려하면서 살기 때문에 경계가 흐릿하고 드넓게 펼쳐진 공간에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물이 있는 모든 곳을 좋아하는데, 시골의 강도, 바다도 수영장도 다 좋아한다. 해무가 가득 껴서 하늘과 수평선과 바닥의 경계가 허물어진 곳을 하염없이 걸었던 것을 자주 생각한다.///// 매일은 아니어도 최근 계속 노력하고 있는 루틴은, 운동하는 것. 그리고 의미 없는 웹서핑을 하다 멍해지는 타이밍에 책상에 올려놓은 노트에 크로키 하는 것. 크롬 시작 페이지 3개 중 하나가 크로키 웹사이트다. 노트가 꽤 많이 쌓였는데 볼 때마다 뭐라도 한 것 같아서 뿌듯하다. 사는 게 참 퍽퍽한데 최근에 나는 자신을 비하하기보단 칭찬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