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원
최장원 08/02/21 5:45 PM

〈똥을 싸고 뭉개기〉

내 동생에게 너무나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8월에 하는 개인전에 오라고 말했다. 전시 제목은 《HIV감염 7주년 기념 RSVP》다. 나는 내 동생이 내가 HIV에 감염된 것을 모르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동생은 내가 HIV를 주제로 한 작업으로 참여한 전시에 와서도 그것에 관해 얘기하지 않아서, 그냥 그 애가 아주 둔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애가 전시에 비치된 글을 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통화로 '전시에 와~ 근데 전시 제목을 보면 네가 까무러칠지도 모르는데~'라고 말했다. '뭔데 그래?' 나는 '나 7년 전에 심하게 아팠던 거 기억나? 그거 급성 HIV 증후군이었어.'라고 말했다. 그 애는 '어... 나 알고 있는데?'라고 대답했다.

내가 HIV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어머니였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얘기하면서 '네 동생에게도 말했더니 너무 놀라 충격을 받아서 감당을 못하길래 오진이라고 둘러댔다'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나는 7년 동안 동생이 내가 HIV에 감염된 줄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통화에서 동생은 자신이 부모님보다 먼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HIV가 몸에 처음 침투하면 '급성 HIV 증후군'이 생긴다. 사람마다 증상이 다른데, 보통 발열, 두통, 뇌수막염, 구토 등으로 온다. 나는 매우 심한 뇌수막염 증상이라고 생각해서 대전 건양대에 입원했다. 그때 내 동생이 대전에 있어서 나를 보러 병원에 왔었다. 그때 내가 상태가 매우 안 좋아 져서 혼자 복도를 헤매면서 집에 간다고 헛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걸 보고 심각하게 여긴 동생이 부모님에게 연락했다. 이후 가족들은 나를 더 큰 병원인 충남대로 옮겼다.

수화기 너머로 동생은 건양대에서 의료진들이 내가 혈액 내 어떤 항원이 지나치게 높다고 말하는 걸 듣고 알게 되었다고 했다. 동생은 의료 관련 공부를 해서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었던 것 같다. 동생은 그 이후로 건양대 측에서 나를 조금 격리하려고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또 그 애는 이후 옮긴 충남대에서도 내가 HIV감염인이어서 응급실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주사 놓는 것을 늑장 부린다든가 하는...

나는 7년 동안 잃어버린 동생을 찾은 것 같다고 동생한테 말했다. 동생은 '어... 서운한데...?'라고 했다. 나는 'HIV를 주제로 한 내 작업물들을 봐도 별말을 안 하길래. 네가 미술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넌 SNS도 전혀 안 하니까 내가 인터넷에서 하는 얘기들을 못 봐서 모르는 줄 알았지...!'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몇 마디를 더 나눈 뒤에 그 애에게 내 전시회 일정을 알려주고 통화를 마쳤다.

왠지 기분이 좋기도 하고 마음이 이상해서 어머니에게 통화를 걸어 동생과 통화한 것을 얘기했는데 '어 걔 알아...;;;'라고 했다. 내가 동생한테 '7년 동안 잃어버린 동생을 찾은 것 같다'라고도 말했다고 하니, 어머니는 '똥을 싸고 뭉개고 있네...;;;'라고 했다. 나는 똥을 싸고 뭉개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