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

정덕현

06/30/21
휴일 작년 나는 3년간 일해 온 직장이 없어지면서 간간이 들어오는 알바를 제외하고 일을 하지 않았다. 올...

휴일

작년 나는 3년간 일해 온 직장이 없어지면서 간간이 들어오는 알바를 제외하고 일을 하지 않았다. 올해 초에는 작업실을 구하지 못해 4개월 정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미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후 이렇게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휴일이었다.

월요일, 화요일은 조카와 놀았다. 월, 화는 형과 형수가 다 일하는 날이어서 부모님이 아이들을 봐주신다. 조카는 나에게 늘 말하기 놀이를 하자고 한다. 말하기 놀이란 장난감이나 인형을 가지고 말하며 노는 것이다. 장난감의 종류에 따라 말하는 주제가 달라지는데 장난감 또봇을 가지고 오는 날은 주인공과 악당으로 대립하여야만 한다. 만날 나에게 악당을 시킨다. 나는 어른의 화술로 주인공을 더 악당이 되게 만들어버리고 조카를 울리곤 한다.

수요일, 일요일은 등산한다. 주로 용인 법화산을 오르는데 등산로 입구에서 1시간이면 정상을 찍는 동네에 있는 작은 산이다. 정상에서 봉우리를 하나 더 넘으면 천주교 공동묘지가 나오는데 그 풍경이 어느 공원보다 아름답다. 무덤들을 바라보며 샌드위치 하나와 맥주를 마신다. 산 사람은 먹어야 하니까.

목요일에는 특식을 만든다. 우리 집은 각자 식사하는 시간대가 달라서 가족들이 겸상을 안 한 지 오래다. 내가 먹을 것은 직접 만드는 편인데 목요일은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특별한 음식을 해 먹는다. 나는 그때그때 주변에 있는 재료를 접목하는 냉장고 비우기 스타일이라서 다음에 똑같은 맛을 만들어 내는 건 잘하지 못하지만, 맛은 항상 훌륭해서 신기하다. 마치 길치가 느낌대로 걸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함같이.

금요일, 토요일은 종일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텔레비전과 휴대폰에 흥미가 떨어지면 책을 읽는다. 가끔은 너무 누워있어서 등이 아프다. 어쩌다 약속이라도 생기면 아주 기분이 좋다.

두 달 전부터 친구 작업실에서 드로잉을 하고 있다. 또 두 달 전부터 성인 취미 미술학원에서 밤에 일한다. 작업실도 계약해서 8월부터는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다행히 그릴 것들도 머리에 가득하다. 휴일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