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하
지난 4년 동안 나는 작업을 진행하며 밤섬을 관찰했다. 역사적 사건이 만든 숨죽인 자연은 아름다운 동시에 미치도록 섬뜩했고, 그 고요함은 나를 모든 과거의 순간으로 데리고 갔다. 매년 여름철이면 찾아오는 비는 나무 꼭대기까지 차오르며 섬이 쌓아온 풍경들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하지만 이내 새로운 계절은 허망함이 주었던 충격을 금방 잊게 했다.
작년 비는 유독 거세서 뉴스에는 연일 비로 인해 발생한 사건사고들이 보도되었다. 거리 곳곳에서 통제 불가능한 상황들이 발생하고, 대책으로 가지고 온 이야기들은 이미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속수무책 한 소리일 뿐이었다. 후덥지근하게 다가오는 축축한 공기와 양방향에서 쏟아지는 비는 피부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 습도는 날이 지나도 당최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아침이면 비가 멎기만을 바라며 잠에 들곤 했다.
홍수가 끝나고 섬에 다시 방문했다. 섬에는 여전히 뿌리를 붙들며 남아있는 나무들이 있었고, 어디서 흘러왔는지 모를 정체 모를 씨앗이 새로이 잎을 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묘한 공존의 풍경은 내가 이전엔 발견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디테일이었다. 모든 사라지는 것은 그 자리에 새로운 운동성을 남긴다는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합정지구 전시를 위해 작업을 마감하고 있을 때 즈음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10년 전 죽은 멍충이의 물건을 이제야 버릴 용기가 생겼다는 엄마는 일 키로도 안 되는 작은 존재가 이 집안에 흔적으로 남긴 온갖 물건 들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어 나에게 보내고 있었다. 이제 멍청이는 카카오톡에 전송된 사진으로 살아있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나는 아마 내년 내후년에도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 둥글게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변화를 거치며 만들어질 아지랑이같은 기억들이 분명 우리의 현재를 선명하게 비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