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담

이성민

06/10/21
*이 글은 마치 그날들의 일기처럼 각색되어, 다소 의식의...
실패담

**이 글은 마치 그날들의 일기처럼 각색되어, 다소 의식의 흐름대로 작성된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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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출근을 알리는 달이 떠오른다. 나는 차에 올라탄다.
아직은 해가 완전히 저물지 않았지만 모두가 '저녁시간'이라고 인정할 만한 하늘색이다.

내가 쿠X 새벽 배송 일을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다.
또한 새벽 배송에는 무거운 물건들이 없다는 소문도 선택에 큰 몫을 했다.
일은 쉽게 하고 싶었던 얄팍한 생각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입사 면접에서 새벽 배송 자리가 있다고 했고,
하겠냐? 해서 하겠다 고 했을 뿐이다. 당시 나는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청년이었다.

원래 나는 나무 그릇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어디선가 누군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나는 그냥
목수일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사실 나무 그릇을 만드는 일은 목공예에 가깝다.
나무를 기계에 물리고 고속으로 회전시킨 후에 돌아가는 부재에 칼을 대서 깎는 과격하면서 동시에 섬세한(?) 방식으로 한국에서는 '갈이'라고 불리고 외국에서는 'woodturning'이라고 불린다.
주로 제사에 쓰이는 제기를 생각하면 이해하실 수 있으실꺼다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말이 너무 길어지고, 말이 길어지면 귀찮아하는 성격 때문에 나는 그냥 목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인테리어 업자 정도로 생각을 한다.

쿠X 배송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원래 어떤 일하셨었어요?
배송 시작 전 잠깐 짬이 나는 시간에 같이 음료수를 마시며 물어본다.
요리사, 호텔리어, 가정주부, 직업군인, 백수, 프로그래머
나랑 같은 업종은 아니지만 어쨌든 목수, 인디 뮤지션,
실 만드는 사람, 그 실로 천 만드는 사람, 그 천으로 만든 옷 팔던 사람 등등
우리 주변에 숨어 있을법한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것 같다.
각자 저마다의 사정으로 이곳에 모였다.

내가 일하는 쿠X 캠프에서는 모두가 물건을 상차하기 5분 전 각자의 차량 앞에 서서 대기한다.
사람들의 대열만 보자면 타원형으로 서로 바라보고 있는 꼴이다.
곧이어 방송이 나오고 구령에 맞추어 목, 어깨, 손목, 허리, 무릎, 다리 순으로 정해진 스트레칭 동작을 함께 한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퇴근하면 남이 되는 나의 동료들의 면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들 고생 많으십니다.